잡담 :: WE ㅣ 삶과 죽음

 

TV에선 걸그룹이 춤추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6인 병실 한 가운데엔 TV가 한 대 놓여 있었다. 마침 가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TV에선 걸그룹의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땜에 미쳐가. 넌 내게 미쳐가.” 

 

6인 병실 한켠에 외할머니가 누워계셨다. 외할머니는 기력이 없으셨다. 늙은 딸이 왔는데도 눈조차 뜨지 못했다. 늙은 딸은 죽어가는 엄마의 귀에 대고 흐느꼈다. “엄마, 왜 이렇게 됐어. 엄마, 눈 좀 떠봐.” 걸그룹이 노래했다. “오빠 모해 바빠?”

일주일 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지난 6 20일 늦은밤이었다. 지방에 사는 늙은 딸은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TV에서 유행가가 흘러나오던 그 날이 모녀의 마지막이 됐다. 유별난 일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끄럽고 서글픈 풍경이다

 

호스피스 병동이 더 왁자지껄한 건 이상할 것도 없다. 죽을 사람이 원한다. 외할머니 맞은편에 누워 있던 환자도 TV를 무척 좋아했다. 한 달도 더 살까 말까한 환자가 1년 뒤에나 끝나는 일일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삶에 밀착해서 죽음을 잊었다. 살 사람도 원한다. 죽음은 살 사람한테도 공포고 상처다. 살 사람도 죽을 사람도 직면한 죽음을 외면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틀어져 있는 TV는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이 함께 지어낸 하얀 거짓말이다

 

외할머니의 세례명은 막달레나였다. 장례식은 천주교 절차에 따랐다. 외할머니를 사랑했던 신도들은 위령기도를 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이었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막달레나에게 천국 낙원의 문을 열어주소서.” 

 

연도 소리를 듣다가 걸그룹이 춤추고 노래하던 마지막 만남이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삶의 마지막 몇 달 동안 보고 듣고 싶었던 게 삶을 떠들어대는 야단법석 TV소리였을까. 조용히 숙명적으로 다가올 죽음과 직면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한사코 이중적이다. 죽음이 삶의 일부인데도 우리 안에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 자체를 억압해버린다. 우리의 인생관이 자본주의화돼 있기 때문이다. 생의 의지가 넘쳐나는 자본주의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원히 살 것처럼 삶을 욕망해야 한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의 허무를 인정하면 죽임을 당하기 십상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선 호스피스 병동처럼 죽음이 서려 있는 곳에서조차 죽음을 온전히 직시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죽음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삶에 대한 태도마저 이중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살지는 곧 어떻게 죽을지를 통해 결정된다. 끝이 없는 삶은 끝없이 비겁해진다. 죽음은 없고 삶만 계속된다고 믿게 만드는 자본주의화된 인생관은 우리를 생존 제일주의에 물들게 만든다.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살아남으면 그만이다. 이래선 삶을 완성할 수 없다. 죽음은 완성이 아니라 패배일 뿐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모두가 패배자가 된다.

 

죽은 애들만 억울하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흘러나온 볼멘소리였다. 세월호 참사 일주일 뒤부터 경제지들은 앞다퉈이젠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지금도 세월호 참사 때문에 내수가 침체됐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호스피스 병실에 TV를 틀어놓는 짓이다. 그것도 환자가 아니라 간병인이 볼륨을 키우는 짓이다. 죽음을 회피하는 짓이다. 죽음을 외면하는 사회는 이렇게 천박해진다.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유작 <어떻게 신 없이 죽을 것인가>을 쓰면서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시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 삶을 완성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어떤 죽음은 삶의 품격을 완성한다

 

지난 6 25일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등교를 했다. 삶이 시작됐다. 외할머니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의 뒷모습을 마주하고 자문했다. 과연 우리는 죽음들을 받아들인 것인가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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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