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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4 젊은 롯데의 슬픔 (2)
  2. 2014.12.09 삼성전자의 미생
  3. 2014.11.20 SM의 소녀시대정신
  4. 2014.09.17 맥주의 참상 (38)
  5. 2014.09.02 효성의 효심 (5)
  6. 2014.08.20 동부의 승부 (2)
  7. 2014.08.10 이랜드의 뉴밸런스 (20)
  8. 2014.07.31 LG전자의 어닝 서프라이즈 (2)

 

2010 6 17일이었다.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은 런던에서 <조선일보> 인터뷰를 했다. 당시 <조선일보> 신동빈 부회장한테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보다 훨씬 크다. 형님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은 한국 롯데를 경영하고 싶어하지 않나. 신동빈 부회장은 잘라 말했다. “이미 오래 전에 회장님이 한국과 일본 경영을 나눠줬으니 형님이 그런 말씀은 하지 않는다. 어느 시점이라고 잘라 말하긴 어렵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정해지게 됐다.

 

시장에선 신동빈 부회장의 발언을 후계 구도의 의미로 해석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롯데그룹 2 승계 구도가 당사자에 의해 구두로 확인됐다고 받아들였다. 오랜 동안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부회장이 맡고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부회장이 맡는다는 시장의 정설이었다. 창업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한일 셔틀 경영을 했지만 한국롯데와 일본 롯데는 오랜 동안 형제에 의해 독립 경영돼왔기 때문이다. 자연히 한국은 신동빈, 일본은 신동주라는 구도가 안착됐다. 롯데야말로 후계 구도가 가장 단순한 기업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나 막내딸인 신유미 씨가 주목 받았을 말고는 일본은 신동주고 한국은 신동빈이란 구도가 안착된 보였다.

 

최근 구도가 뿌리채 흔들리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신동주 부회장은 일본 롯데 그룹의 모든 공식 지위를 박탈당했다. 1 8 열린 임시주총에선 롯데홀딩스의 부회장직에서도 밀렸났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창업자의 장남, 경영진에서 추방됐다”고 보도했다.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모두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다.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신동주 부회장이 롯데그룹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했단 의미로 해석될 있다.

 

이제야 명백해졌다. 일본 신동주, 한국 신동빈이라는 단지 사업 구도일 뿐이었다. 일본과 한국 롯데의 경영을 장남과 차남이 나눠 맡는다는 뜻이지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장남과 차남한테 분할 상속해준다는 뜻이 아니었다. 따져보면 롯데그룹은 본질적으로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로 분할돼선 되는 기업이다. 롯데그룹의 진짜 경쟁력은 한일 양국의 경기차와 환율차와 문화차와 시간차에 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에 걸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야 말로 롯데의 성공 요인이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롯데그룹의 중추는 일본 롯데였다. 1990년대부터 롯데그룹은 한국롯데로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겼다. 롯데그룹은 소비제 기업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내수 소비가 확대되는 시장이야말로 롯데한텐 가장 좋은 성장 토양이다. 1990년대부터 한국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내수 소비가 확대됐다. 다양한 소비 문화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신동빈 부회장이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하면서 한국 롯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도 1990년이었다.

 

롯데그룹은 한발 앞선 일본의 소비 트렌드를 한국에 적용시켜서 성공을 거뒀다. 도심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나 롯데마트 같은 사업은 한일 양국의 인플레이션 경기차를 미리 읽은 사업 아이템이었다. 반면에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같은 수입 품목들은 한일간 디플레이션 시간차를 활용한 사업들이었다.

 

물론 이런 구조에선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가 한국 경제보다 앞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한국 롯데의 성장세가 일본 롯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신동빈 부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아닌 해명을 했다. “일본의 경제성장 자체가 너무 둔화됐었다. 나는 성격상 지키는 것보다 공격하는 좋다. 형님은 반대로 오펜스보다 디펜스를 한다.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성격의 차이다.

 

능력이든 성격이든 형제의 경쟁은 숙명이었다. 언젠간 결승전이 불가피했다.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결정적인 변수는 2롯데월드였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하늘을 찌르면서 롯데그룹 안에서 한국 롯데와 신동빈 부회장의 위상도 강화됐다. 신동빈 부회장은 한국 롯데 회장 자리에 올랐다. 반면에 신동주 부회장은 자충수를 뒀다. 롯데제과와 롯데알미늄 같은 일부 계열사 지분을 매수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자초하고 말았던 보인다.

 

사실 롯데 경영권 승계에선 계열사 지분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확보가 핵심이다. 궁극적으론 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이면서도 베일에 싸인 광운사와 일본 주식회사L 통칭되는 정체불명의 특수목적회사들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후계가 달려있다. 신동빈 회장은 이미 롯데월드타워로 중원을 장악하자 신동주 부회장은 외곽을 때려서 반전을 도모했다. 마지막 패착이었다.

 

사실상 신격호 회장은 대학 시절부터 40 동안 아들을 경쟁시켰다. 1954년과 55 연년생인 형제는 나란히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하고 각각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 일정 시기에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에 입사했다. 평생 아버지 아래에서 경쟁해온 셈이다. 어차피 사람만 남는 경쟁이었다. 처음부터 제국은 나눠질 없었다. 왕좌 앞에선 형제도 적이었다.

 

신격호 창업주는 롯데라는 사명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가져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이 샤롯데다. 샤롯데는 베르테르와 사랑에 빠지지만 이미 알베르트와 약혼한 사이다. 샤롯데는 평생 베르테르와 알베르트 사이에서 번민한다. 신격호 회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의 샤롯데를 향한 열정을 본받고 싶어했다. 신격호 회장한테 롯데 그룹은 영원한 사랑이었다. 정작 롯데는 창업주의 두 아들 사이에서 오랜 동안 번민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롯데의 운명이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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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


지난 11월 24일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어판을 통해 삼성전자와 관련된 특종 기사를 하나 내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익명의 삼성 소식통을 이용해서 이렇게 썼다. “현재 논의 중인 조직 개편안에 따라 부침을 겪어 온 스마트폰 사업 부문을 진두지휘해온 신종균 IM 사장이 모바일 부문 수장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 결과, 신사장이 공동 대표이사직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또한 소식통에 따르면 나머지 2명의 대표이사 가운데 소비자 가전 부문을 총괄하는 윤부근 사장이 모바일 사업 부문도 총괄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난리가 났다. 삼성전자의 연례 정기 인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삼성전자의 연례 정기 인사는 정부의 내각 개편만큼이나 주목 받는 이벤트다. 글로벌 1위 삼성전자의 인사 개편 방향은 다른 경쟁 기업들의 인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시장의 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는 이번 개각에서 이른바 총리급이 바뀐단 얘기였다. 연봉 120억 원을 받는 신종균 사장은 샐러리맨들 사이에선 총리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존재다. 


신종균 사장이 총괄해온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 부문의 실적이 악화일로인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삼성전자의 2014년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60%나 감소했다. 전기 대비로도 43%나 쪼그라들었다. 원인은 모바일 사업 부문의 추락이었다. 한때 10조원을 넘어섰던 실적이 2014년 3분기엔 2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삼성은 신상필벌로 유명하다. 당연히 연말 인사에서 모바일 사업 부문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영업이익 10조 신화와 주역 신종균 사장조차 예외가 아니라고 보도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재계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파동이 일었다. 


지난 12월 4일 삼성전자는 정기 인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종균 사장은 유임됐다. 신종균, 윤부근, 권오현의 3인 공동 대표 체제도 유지됐다. 결과적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이 오보를 낸 꼴이 됐다. 결과는 틀렸지만 전부 다 틀린 건 아니다. 이번 인사로 고뇌하는 삼성전자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론은 유임이었지만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미생집이 됐다. 여느 기업 조직 인사에서처럼 살았으나 밀려버린 직장 조직의 미생들이 대거 양산됐다. 개발과 마케팅과 미디어솔루션 부문의 고위 임원들이 대거 해임됐다. 모바일 사업부의 수장 신종균 사장은 자리를 지켰지만 신종균 사장과 함께 10조 신화를 창출했던 주역들은 대거 밀려났다. 임원 인사에 이어질 부장급 인사에서도 미생들이 속출할 공산이 크다. 


신종균 사장은 갤럭시 신화의 상징적 존재다. 2009년 무선사업부 부사장을 맡으면서 5년 동안 삼성전자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복귀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문제는 이건희 후방사령부와 신종균 야전사령부가 합작했던 삼성전자의 전성기가 끝나버렸다는 진실이다. 2013년이 정점이었다. 2014년으로 접어들면서 삼성전자의 실적과 점유율과 시장 장악력은 현저하게 약화되고 말았다. 기대작 갤럭시S5가 부진하면서 기술 선도력도 잃었다. 2014년 연말 인사가 특히 주목받았던 이유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야전사령관은 유임시키되 야전사령부는 개편하는 타협책을 선택했다. 원인은 아직 후방사령부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는 2015년이면 더욱 본격화될 이재용 부회장 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삼성에 대한 장악력을 빠르게 높여가고 있다. 2014년 내내 삼성그룹은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했다. 이재용 체제의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었다.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재용 체제의 삼성은 전자와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지주 회사 체제가 될 터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한화그룹에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과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매각하면서 비주력 사업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글로벌 1등 사업에만 집중하겠단 뜻이었다. 


문제는 이재용 체제의 소프트웨어였다. 이번 인사에선 권오현 부회장이 이끄는 부품 사업부의 승진폭이 컸다. 올해 부품 사업부의 메모리 반도체 부분이 삼성전자의 실적을 방어해준 측면이 작용했다. 반도체 부분은 오늘의 삼성전자가 있게 해준 어제의 캐쉬카우다. 모바일 사업부가 오늘의 캐쉬카우로 급성장하면서 가려진 측면마저 있었다. 지금은 오늘의 캐쉬카우가 맥을 못추자 다시 어제의 캐쉬카우가 부각되는 모양새다. 정작 지금은 내일의 캐쉬카우가 필요한 순간이다. 해법은 이재용 체제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다. 아직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중인 이재용 체제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작업을 본격화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3인 공동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단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윤부근 가전부문 사장이 신종균 사장을 대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밖으로는 신정균 사장과 윤부근 사장의 사내 권력 투쟁처럼 비춰졌다. 사실이라면 이런 권력 암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일의 캐쉬카우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필연적인 노선 갈등이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여느 기업에서라면 자칫 난파선에서 구명 보트를 놓고 싸우는 소모적 암투가 될 수 있다. 삼성에선 하기에 따라선 오히려 생산적 갈등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은 갈등을 조종할 수 있는 제왕적 오너가 존재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사내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고 봉합할 줄 아는 오너였다. 


게다가 갈등의 방향은 일단 맞았다. 삼성전자가 영위하고 있는 하드웨어 전자 산업의 다음 진화 단계는 사물 인터넷이다. 모바일 기기에만 국한됐던 네트워크가 모든 가전 기기로 확대된다. 당연히 모바일 사업부와 가전사업부가 통합될 수밖에 없다. 이때 주도권을 모바일이 잡느냐 가전이 잡느냐가 이재용 체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의 핵심이다. 이번 인사에선 결론이 안 났다. 지금은 삼성전자야말로 바둑판 위에 서 있으나 아직 활로를 못 찾은 미생이다.

 

지금 삼성전자는 기로에 서 있다. 삼성전자 안에선 지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충돌하고 있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저력이 있는 회사다. <인터스테라>의 주인공 쿠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삼성도 그래왔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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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

 

SM엔터테인먼트에 소녀시대 리스크가 터진 건 벌써 두 달 전인 지난 9월 30일이었다. 이미 리스크가 알려진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단 얘기다. 그런데도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회복될 기미가 없다. 한중FTA 수혜 기대감으로 11월 들어서 반짝 반등해서 겨우 3만원 대를 회복했다. 한때 5만 원 대였던 주식이다. 


소녀시대는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캐쉬카우다. 소녀시대의 연간 매출액 추청치는 500억 원에 달한다. 그나마도 음반판매와 공연수익만 따진 액수다. 광고수익과 개별활동과 기념품 판매는 빠진 금액이다. 


소녀시대는 9명이다. 지난 9월 30일 SM엔터테인먼트는 소녀시대가 8명이 된다고 발표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제시카가 본인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사에 앞으로 한 장의 앨범활동을 끝으로 팀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알려왔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미 SM엔터테인먼트가 상장돼 있는 코스닥 시장엔 제시카 관련 루머가 확산돼 있는 상태였다. 9월 30일로 예정돼 있던 소녀시대의 중국 심천 팬 미팅에 제시카만 동행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루머가 사실로 확인된 상태였다. 9월 30일 하루만에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4만원대가 깨진 3만9000원까지 떨어졌다. 


소녀시대는 수년 동안 SM엔터테인먼트의 간판 아이돌 제품이었다. 2011년 6월 파리 제니스 공연장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는 유럽과 전세계에 불고 있는 케이팝 열풍을 목격할 수 있는 자리였다. SM타운 파리 콘서트의 메인 무대는 소녀시대한테 맡겨졌다. 소녀시대가 SM엔터테인먼트의 플래그쉽 제품이자 케이팝의 간판 스타라는 걸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은 따로 열린 한류 관련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류는 IT와 BT에 이어 CT로 만들어졌습니다.” 지식기술과 바이오기술에 이은 문화기술이란 얘기였다. 사실상 아이돌 산업도 한국식 제조업의 일환이란 의미도 있었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 산업을 혁신적 제조업으로 발전시켰다. 문화산업의 총화는 결국 스타다. 사람은 사람을 좋아한다. 문제는 스타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 수 없다는 데 있다. 완제품의 품질을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산업화가 되기 어렵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 부분을 극복했다. 10대 시절부터 예비 스타를 발굴해서 집중적 훈련을 통해 춤과 노래를 가르친다. 춤과 음악은 전세계 댄서들과 작곡자들을 하나로 묶은 음악 생태계를 조성해서 조합해낸다. 수천곡의 음악과 가사를 모아놓고 훈련시킨 모델에 해당되는 아이돌한테 옷을 입히듯 입혀본다. 그렇게 아이돌과 춤과 노래를 조립해서 아이돌 스타라는 완제품을 만든다. 이게 CT다. 그리고 한국 CT의 걸작은 소녀시대였다. 


지난 10월 1일 제시카는 SM엔터테인먼트와는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9월 29일 SM엔터테인먼트와 소녀시대로부터 나가달라는 퇴출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제시카가 자신의 패션 브랜드 블랑 사업을 시작하면서 소녀시대의 다른 멤버들과 갈등을 빚은 사실도 드러났다. 제시카는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블랑 사업을 허락받고 시작했지만 돌연 “사업을 그만두던지 소녀시대를 떠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유야 어떻든 소녀시대가 안에서부터 망가진 건 분명했다. CT 제품의 품질에 이상이 생겼다. 여기에 EXO의 불운까지 겹쳤다. EXO는 SM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 제품이다. 동방신기라는 걸작을 만들었던 SM엔터테인먼트는 동방신기가 흔들리면서 남자 아이돌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고 말았다. 


SM엔 슈퍼 주니어가 있긴 했지만 남자 아이돌 시장의 주도권은 YG엔터테인먼트의 빅뱅으로 넘어갔다. SM은 결국 EXO로 권토중래에 성공했다. 그런데 EXO의 중국인 멤버인 루한이 지난 10월 10일 SM엔터테인먼트를 상다로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한 마디로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겠단 얘기였다. 이미 지난 5월엔 같은 그룹의 크리스가 같은 소송을 내고 팀을 떠났다. 소녀시대 리스크에 EXO 소송까지 겹쳤다. 설상가상이었다. 결국 지난 10월 13일에는 2만6700원대까지 폭락했다. 불과 한 달전 4만 원 후반이었던 주가가 반토막이 난 셈이었다. 


CT의 위기다. 문화산업의 최대 무기이자 리스크는 사람이다. 사람이 곧 제품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는 일단 만들어놓으면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르다. 시사각각 변한다. 물론 모든 기업은 인력 리스크를 겪는다. CEO리스크가 대표적이다. 최고경영자가 송사에 휘말리면 해당 기업의 주가에 흔들린다. 그렇다고 기업의 제품이 사람인 건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 같은 CT기업은 사람을 제품화한다. 한번 만들어놓았다고 해도 수시로 품질이 바뀐다. 올 한 해 동안 소녀시대의 멤버들은 시도때도 없이 열애설에 휘말렸다. 윤아, 수영, 티파니, 효연, 태연까지 스캔들이 휘말렸다. 제시카도 재미 사업가 타일러 권과의 열애설이 터졌다. 20대 초반 성인 여성이 연애를 하는 건 자연스럽다. CT에선 제품 품질에 영향을 준다. 아이돌 제품 소비자들의 구매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CT의 한계다. 아이돌은 제품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일정 기간 동안은 춤추고 노래는 로봇처럼 만들 수 있다. 결국 회사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연애를 할 수도 있다. 본인들끼리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다. 심지어 아이돌의 부모들끼리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그걸 억지로 억누르다보면 노예 계약 얘기가 나온다. SM엔터테인먼트도 들어본 비난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SM엔터테인먼트가 한꺼번에 악재를 겪고 있는 건 한류 CT의 태생적 약점 때문이다. 이미 동방신기 리스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CT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다. 사람과 제품의 공존이 가능한 문화를 만드는 게 문화기술의 완성이다. 


소녀시대 리스크로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결정타를 맞았다. 낙폭과대에 대한 반발매수로 하락세는 벗어났지만 의구심은 계속되고 있다. 소녀시대 리스크는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에도 불확실성이 섞여 있다는 걸 드러냈다. 소녀시대 같은 스타 상품은 과대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 해당 기업이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되게 만든다. 일단 고평가된 것은 급락할 가능성을 잉태한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케이팝 열풍을 만든 CT의 혁신가다. 소녀시대를 문화 산업의 시대 정신으로 만들었다. 이제 개인적으로도 사업적으로 불행과 불운을 딛고 자신이 만든 CT의 재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새로운 시대 정신이 필요한 시대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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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



T2N 탓이었다. 맥주는 맥아로 만든다. 맥아엔 지방성분이 함유돼 있다. 맥주병 속엔 용존산소가 용해돼 있다. 맥주가 고온에 노출되면 지방과 산소가 산화반응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맥주 속에 있던 T2N, 그러니까 트랜스 투 불포화 알데하이드가 증가한다. T2N은 맥주향을 내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인체인 무해하다.

T2N의 냄새는 인체에서도 난다. 흔히 할아버지 냄새라고 하는 체취가 T2N 향이다. T2N은 소량일 때는 향긋한 맥주향을 낸다. 100ppt 이상으로 증가하면 민감한 사람은 이상한 냄새라고 느낄 수 있다. 일부 소비자들이 오비맥주의 카스에서 이취가 난다고 느꼈던 건 여름 날씨에 맥주가 산화반응을 일으켜서 T2N이 100ppt 이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8월 26일이었다. 식품의약청안전처는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제품 37건과 소비자들이 냄새가 난다고 신고한 제품 23건을 수거해서 조사한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시중 유통 제품에선 대부분 T2N이 100ppt 이하로 검출됐다. 소비자 신고 제품에선 T2N이 134ppt로 나타났다. 일부 소비자들이 소독약 냄새가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던 이취는 과다한 T2N 향취였다. 맥주향이 너무 강해서 소독약 냄새처럼 느껴졌던 셈이다.


식품의약청안정처는 오비맥주 3개 공장도 현장 조사했다. 제조 과정에서 소독약이 살포되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식품의약청안전처는 오비맥주 제조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인했다. 결국 일부 유통 과정이 문제였다. 과다한 T2N 탓이었다. 이게, 사실이다.


사실보다,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처럼 퍼져나가버린 루머가 더 문제였다. 카스에서 이취가 난다는 소비자 신고가 접수되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초부터였다. 그 무렵 누군가 SNS를 통해 이런 얘기를 흘렸다. "업계 불문율이 있어서 자세하게 공개를 못하지만 2014년 6월부터 8월까지 생산된 카스 제품은 진짜 마시면 안 됩니다." "가임기 여성들은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이취의 원인은 어느 맥주에나 들어 있는 T2N이었다. 오비맥주가 일부 유통 과정에서 냉장 보관을 소홀히 했을순 있다. 유언비어의 내용은 카스에 독극물이라도 들어있다는 듯한 투였다.


당연히 오비맥주에선 난리가 났다. 맥주 사업은 여름 한 철 장사나 다름 없다. 여름철에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2014년 6월부터 8월까지 생산된 카스를 마시지 말라는 건 망하란 얘기나 똑같았다. 게다가 가임기 여성 운운하면서 아이 얘기까지 건드렸다. 원래 식품료 시장은 루머에 취약하다. 사람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한번 루머가 퍼지면 사실무근이라고 해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라면 업계 부동의 1위였던 삼양라면이 농심한테 선두 자리를 내줬던 것도 공업용 우지 파동 탓이었다. 사실 공업용이라고 해도 인체에는 무해했다. 문제는 공업용이라는 꼬리표였다. 공장 기름으로 만든 라면을 팔았냐는 비난 여론을 삼양라면도 견뎌내지 못했다. 애들 먹거리의 경우엔 파괴력이 두세배다. 맥주는 어른 먹거리다. 그런데 가임기 여성을 끌어들여서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 악의적이었다.


오비맥주도 루머로 치명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1991년이었다. 낙동강 페놀 사태가 일어났다. 두산전자 구미 공장이 페놀을 낙동강에 무단 방류했다. 대구와 부산의 상수원이 오렴돼 버렸다. 수돗물에선 악취가 났다. 두산그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두산제품 불매 운동으로 확산됐다. 당시 두산그룹의 계열사였던 오비맥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때 오비맥주의 사명은 동양맥주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양맥주는 맥주 시장 부동의 1위였다. 그 때 2위였던 조선맥주가 지금의 하이트진로다. 당시 조선맥주는 하이트 맥주를 팔면서 이렇게 광고했다. "맥주를 끓여드시겠습니까?" 페놀 파동을 라이벌 공략에 십분 활용한 셈이었다. 동양맥주 입장에선 억울절통할 수 밖에 없었다. 페놀과 맥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소비자들은 동양맥주의 해명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양맥주는 1996년 조선맥주한테 정상 자리를 내줬다. 1997년 벨기에 맥주 회사 인터브루한테 매각되고 말았다.


지금도 오비맥주엔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오비맥주 대리점주들은 더하다. 대부분 수십년 동안 맥주 유통을 해온 사장님들이기 때문이다. 오비맥주가 카스 이취 소문이 퍼졌을 때 경찰 수사까지 의뢰한 이유다. 오비맥주는 "특정 세력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카스에 대한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오비맥주가 무리하게 강경 대응하는 걸로 보였다. 연예인이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을 고소하는 수준 같았다.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오비맥주에 대한 인터넷 악성 게시글의 IP를 추척했다. 오비맥주의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직원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결국 지난 9월 3일 경찰은 서초동 하이트진로 본사와 지역 대리점까지 압수수색했다.


하이트진로는 "관리직 직원 한 사람이 SNS에 올린 일부 과장된 내용이 담긴 사적인 글"이라는 입장이다. 사실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를 겨냥해서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게 아니었다. 우연히 하이트진로 직원의 IP가 발견되면서 분위기가 삼엄해지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맥주 냄새가 문제가 아니다. 라이벌 기업간의 악취가 문제다.


2012년 여름 오비맥주가 절치부심 끝에 하이트를 추월할 수 있었던 건 밀어내기를 없앴기 때문이었다. 맥주를 대리점 창고에 쌓아놓았다 밀어내듯 유통시키면 맥주 맛이 없어진다. 맥주는 공장에서 막 출시됐을 때 가장 맛있다.


유통을 개선하자 맥주 맛이 살아났다. 오비맥주는 지난 1월 AB인베브한테 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에 매각됐다. 성공한 딜이다. 원동력은 유통 혁신이었다. 그래서 일부 제품이긴 하지만 유통 과정에서 냄새가 생겼다는 건 오비맥주한텐 더 뼈져리다.


하이트는 경찰 압수수색은 회사가 아니라 개인에 대한 조사라고 밝혔다. 어쨌든 먹거리를 생산유통시키는 일을 하는 대형 회사의 직원이 스스로 악성 루머를 퍼뜨려서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건 사실로 드러나는 모양이다. 그 행위가 라이벌 기업은 물론이고 업계와 사회를 대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담했다. 수치다.


사실 요즘 맥주 소비자들의 관심사는 오비와 하이트가 아니다. 중장년층 사이에선 롯데의 클라우드다. 청년층에선 집집마다 맛이 다른 수제 맥주다. 맥주 시장은 21세기로 진화하고 있다. 양대 맥주 회사만 아직도 1991년에 머물러 있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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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

 

조현문 법무법인 현의 고문변호사는 지금 효성그룹과 무려 10여 건이 넘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조현문 변호사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이다. 2011년 9월까진 효성의 중공업 사업그룹장을 맡아서 그룹 경영에도 참여했었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의 유명 로펌에서 일하던 조현문 변호사를 그룹 경영에 참여시킨 건 아버지 조석래 회장의 뜻이었다. 지금은 효성가와는 남보다 못한 불편한 사이가 됐다.

 

조현문 변호사는 지난 6월 효성 계열사인 더프리이엄효성과 골프포트와 갤럭시아의 자산을 중점 관리하는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주)신동진의 최현태 대표를 배임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태다. 두 회사의 대주주는 조현문 변호사의 형인 조현준 효성 사장과 동생인 조현상 효성 부사장이다. 최현태 대표의 횡령배임 혐의가 인정될 경우 검찰 조사가 대주주인 형과 동생한테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미 2012년 10월부터 트리니티와 신동진에 대한 회계 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을 해 둔 상태였다. 트리니티와 신동진이 회계 장부를 임의로 조작하지 못하도록 하는게 소송의 목적이었다. 하루 이틀 된 싸움이 아니란 얘기다.

 

현재 효성그룹은 지난 1월 조석래 회장과 장남 조현준 사장과 이상운 부회장이 분식회계, 탈세, 횡령, 배임 혐의로 검찰 기소를 당한 상태다. 6월부터 1심 재판이 시작됐다. 효성그룹을 전담하고 있는 검찰 부서는 윤대진 검사가 이끄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다. 윤대진 검사는 난다 긴다 하는 특수통 중에서도 자타공인 천하 제일검이다. 기업의 장부 조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윤대진 검사는 2013년 10월부터 4개월 여 동안 효성 장부를 샅샅이 살펴본 끝에 9000억 원에 달하는 분식회계 혐의로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을 기소했다. 이제까지 윤대진 검사의 수사망을 빠져나간 기업과 기업인은 없었다. 윤대진 검사는 2013년엔 CJ그룹을 포위 수사한 끝에 이재현 회장을 구속시켰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의 공소장 안엔 차남 조현문 변호사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당초 서울중앙지검은 조석래 회장과 3형제를 모조리 수사 선상에 놓고 강도 높게 조사했었다. 결국 조현문 변호사는 중공업 경영에만 간여했을 뿐 효성그룹의 범죄에는 관련이 없는 걸로 확인돼 기소유예됐다. 효성그룹에 대한 조사는 그렇제 조현문 변호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될 것 같았다. 그런데 5개월 뒤 조현문 변호사가 효성그룹 계열사 대표를 배임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고 나서면서 다시 파문이 커지게 됐다.

 

효성그룹 사건은 전형적인 기업 구태 비리 사건이다. 동시에 효성그룹이 전 정권과 가까웠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정치 수사의 성격도 띄고 있다. 여기에 조현문 변호사가 가문을 상대로 전방위 소송전에 나서면서 전형적인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비춰지고 있다.

 

둘은 맞고 하나는 틀리다. 검찰은 효성그룹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고가 장비를 허위 구매하는 가공 거래와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외화 밀반출과 오너의 재산을 은닉하는 차명 거래까지 전형적인 구태 비리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비로소 검찰이 CJ에 이어 효성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도 정치성을 지우긴 어렵다. CJ가 전 정권과 학맥으로 이어져 있었다면 효성은 더 가까운 인척 관계였다. 조석래 회장의 조카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며느리다.

 

반면에 조현문 변호사와 효성가의 다툼은 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조현문 변호사는 비리 투성이인 효성그룹 오너가에 반기를 들다 사실상 파문 당했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조현문 변호사는 그룹의 광범위한 비리 사실을 아버지 조석래 회장한테 직보했던 걸로 알려졌다. 2011년이면 전 정권의 임기 마지막해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 수사가 효성을 압박해올지도 몰랐다.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은 조현문 변호사의 직언을 무시했다. 검찰 공소장엔 조석래 회장이 직접 큰 아들 조현준 사장에게 각종 비리 행위를 지시한 걸로 나타나 있다. 조현문 변호사의 양심 어린 호소가 통하긴 처음부터 어려웠단 얘기다. 효성의 비리는 너무 뿌리가 깊었다. 

 

결국 조현문 변호사는 효성가에서 파문 당했다. 2013년 2월 조현문 변호사는 갖고 있던 효성 지분을 대부분 매각했다. 사실상 효성과의 관계를 끊었다. 2013년 5월부터 국세청이 효성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마침내 조현문 변호사가 우려했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됐다. 2013년 10월 검찰의 사냥이 본격화됐다. 결국 조현문 변호사는 아버지와 큰 형이 재판정에 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조석래 회장은 끝내 암이 재발하고 말았다. 얼마 전 재판부와 검찰의 허락을 얻어서 전립선암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장남 조현준 사장과 삼남 조현상 부사장은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인데도 지분 매입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조현문 변호사가 경영권 경쟁에서 빠진 상황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조석래 회장은 올해 78세의 고령이다. 윤대진 검사는 이제까지 한 차례로 기소한 기업인의 범죄 사실을 소명하는데 실패한 적이 없다. 결국 9000억 원에 달하는 비리의 총책임을 조석래 회장이 대부분 지게 될 공산이 크다. 대신 조석래 회장의 지분 10.15%의 향배에 따라 효성의 경영권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조현문 변호사가 사실상 형제들을 겨냥해서 전방위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재판 결과와는 상관 없이 결국 효성의 경영권을 갖게 될 형제들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다. 조현문 변호사는 자신이 국세청과 검찰에 효성 비리를 제보했다고 보도한 언론사를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겉보기엔 경영권 다툼에서 패한 둘째가 아버지와 큰 형을 밀고한 것처럼 보이기 딱 좋은 구도다. 정작 세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처럼 세 자식들의 진실과 진심은 겉보기와는 다를 수 있다.

 

효성그룹의 창업주인 만우 조홍제 회장은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의 세 아들들한테 기업을 삼분해줬다. 동시에 각자한테 휘호를 하나씩 써줬다. 장자인 조석래 회장은 숭덕광업이란 글을 받았다. 차남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자강불식을 받았다. 숭덕광업은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는 뜻이다. 지금 효성은 부덕의 소치로 재판정에 서있다.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가운데 할아버지가 내려준 숭덕광업을 실천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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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

2002년 7월이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아남반도체 인수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었다. 모두가 아남반도체 인수에 부정적이었다. 아남반도체는 1990년대 말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를 설계만 하는 회사를 뜻하는 팹리스한테서 하청을 받아서 제조만 하는 기업을 뜻한다. 아직 설계 기술이 없는 신생 기업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게 하청 생산을 하면서 차차 설계 기술력을 키워보는 것도 꿈꿔볼 수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복병이었다. 아남반도체는 좌초됐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아남반도체가 운이 없었을진 모르지만 전략 자체만큼은 틀리지 않았다고 봤다. 아남반도체의 반도체 설비를 싼 값에 인수할 적기였다.

사실 김준기 회장도 진작부터 반도체 시장 진출을 도모해왔다. 1997년 동부전자를 세우면서 마침내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동부전자의 사업 모델도 아남반도체와 같았다.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이었다. 동부그룹이,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작정했다면, 아남반도체 인수가 정답이었다. 단시간내에 선발 주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아남반도체 인수를 반대하는 동부그룹 임원진 앞에서 김준기 회장은 말했다. “반도체 사업을 7년 이상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동부그룹은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다.

동부그룹은 일단 아남반도체를 인수해서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의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김준기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때 직원 2명과 함께 창업했다. 김준기 회장은 평생을 비즈니스의 전장에서 보낸 사업가였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단 얘기다. 반도체 분야는 초기 생산 설비를 완공하는데만 1조원이 넘게 든다. 매년 매출의 50% 이상씩을 설비에 재투자해야 한다. 치킨 게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김준기 회장은 우선 삼성전자에서 최고급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성공해본 사람이 알고 있다. 최창식, 구교형, 김택수, 송재인, 김갑용, 유광동, 김범석, 이진수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를 이끌어온 최고급 두뇌들이 동부그룹에 차례로 합류했다. 모두 김준기 회장이 직접 비싼 몸값을 주고 영입한 인재들이었다.

김준기 회장은 인재 뿐만 아니라 자본도 끈질기게 투입했다. 동부그룹은 2004년 아남반도체와 동부전자를 합병했다. 동부아남반도체를 설립한다. 규모부터 키웠다. 2006년엔 동부일렉트로닉스로 간판도 바꿨다. 동부일렉트로닉스의 부채 규모는 한때 2조4000억 원까지 불어났다. 모두 동부그룹이 지급 보증을 해준 자금이었다.

그걸로도 부족했다. 동부그룹은 2007년 동부일렉트로닉스와 동부한농화학을 합병해서 지금의 동부하이텍을 만들었다. 동부한농화학은 농약과 비료를 만드는 알짜 회사였다. 두 회사를 섞어서 재무재표를 개선시켰다. 동부하이텍이 고비를 넘을 때마다 임원들은 불안해했고 투자자들은 불평했다. 김준기 회장은 그때마다 더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맨 손으로 동부그룹을 창업한 김준기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동부그룹의 체력이었다. 동부하이텍이 턴어라운드될 때까지 동부그룹이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느냐였다. 동부하이텍은 거의 매년 엄청난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은행권에서 6000억 원에 가까운 신디케이트론까지 있었다. 꽁지돈까지 빌려왔단 얘기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전세계 철강 수요가 줄어들었다. 중국 업체들의 도전도 거셌다. 덕분에 동부그룹한테 주어진 시간이 더욱 줄어들고 말았다.

결국 2013년 12월 김준기 회장과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 매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 선언이었다. 너무 늦었다. 동부하이텍은 동부그룹 전체를 부실화시킨지 오래였다. 1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진시키지 못한 대신 금융과 철강이라는 구성장 동력의 화로는 식어버린 탓이었다.

2014년 6월 김준기 회장과 동부그룹은 동부철강과 동부하이텍이라는 철강과 반도체 주력 계열사를 모두 매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 지금은 중국 업체와 PEF 몇 곳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만 매각 작업 초기엔 인수자조차 좀처럼 나서지 않는 궁색한 처지였다. 동부그룹은 동부화재를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으로 쪼그라드는 걸 피할 수 없다. 채권단은 금융 계열사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자칫 동부그룹 전체가 동양그룹처럼 해체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동부그룹을 망친 건 분명 김준기 회장의 독단경영이었다. 어쩌면 모두의 만류를 무릅쓰고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을 수 있다. 동부일렉트로닉스와 동부한농화학을 혼합해서 실제론 적자인 기업을 장부 상으로만 그럴 듯 하게 만들 때부터 이미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던 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김준기 회장이 틀렸던 건 아니다. 명량해전에 나선 이순신의 선택도 무모했다. 이순신의 일자진 전술은 전술 부재를 자인한 꼴이었다. 그 꼴을 보고 충장 안위마저 “이 싸움은 불가하다”는 현실적 충언을 한다. 이순신은 합리적 충언을 불합리한 결단으로 무릅써야 했다.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지만 전진할 수 밖에 없었다.

김준기 회장도 이순신 장군처럼 명량 앞바다에 섰었다. 고비마다 “이 싸움은 불가하다”는 임원들의 현실적 충언을 무릅써야 했다. 합리적 불가능을 불합리적 가능으로 탈바꿈시키려면 명량의 울돌목 앞에서 탈영병의 목을 배는 이순신처럼 독불장군이 되는 수밖에 없다.

김준기 회장은 이순신이 될 수 없었다.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명량에서 대승할 수 있었던 건 결단의 리더십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선 판옥선의 견고함과 화력의 우세함 덕분이었다. 사정 거리가 길고 명중률이 높은 화포로 함포 공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은 배로도 숫적으로 우세한 적을 상대할 수 있었다. 또 조선이 일본보다 조선 기술이 발달된 덕분에 더 견고한 군함을 건조할 수 있었다. 역사 고증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선 적함을 깨부수는 충파 공격이 가능했다. 게다가 명량 울돌목의 조류도 이순신의 편이었다. 명량은 전략의 우위에 결단의 용기가 더해져서 가능했던 승리였다.

반면에 동부그룹은 충분히 견고하지도 대단히 막강하지도 못했다. 파운드리의 생사여탈권은 팹리스한테 있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는 대만의 TSMC다. 애플이 TSMC한테 물량을 몰아줬기 때문이다. 팹리스를 비위를 맞춰가며 하루하루 생존 투쟁을 벌여야 했던 동부하이텍한텐 기술을 축적할 여력은 없었다.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의 사정 거리는 터무니없이 짧았단 얘기다. 금융과 제철이 언제까지나 반도체를 뒷받침해줄 만큼 견고하지도 못했다. 2007년 미국발 대불황으로 금융과 철강이 동반 침체되면서 세계 경제의 조류도 김준기 회장한텐 불리하게 돌아갔다. 2002년 7월 김준기 회장은 반도체에 도전했다. 나쁜 결정은 아니었다. 패배했을 뿐이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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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

 

2007년이었다. 독일 푸마 본사가 이랜드의 뒤통수를 쳤다. 15년 동안 이랜드한테 맡겨왔던 푸마의 한국 판권을 회수해서 2008년부턴 푸마 코리아를 통해 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랜드는 푸마를 장성시킨 장본인이었다. 이랜드는 반격을 개시했다. 이랜드는 푸마 대신 뉴발란스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랜드는 뉴발란스의 매출은 수직 상승시켰다. 2013년 한국 매출은 4000억 원을 넘어섰다. 반면에 푸마는 뒷걸음질을 쳤다.

 

이랜드는 이번엔 푸마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 이랜드는 2013년 미국 스포츠웨어 케이스위스를 인수했다. 자기 브랜드를 손에 넣었다. 뉴발란스는 이랜드의 케이스위스 인수를 이해 상충을 이유로 반대했다. 소용없었다. 이랜드가 아쉬운 건 뉴발란스였다. 이랜드는 2013년 전세계 최초로 뉴발란스 키즈를 런칭했다. 이랜드는 뉴발란스의 시장을 아동화 영역까지 확대시켰다. 대리점주가 본사 영업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었다.

 

이랜드는 흔히 M&A로 성장한 기업의 대명사로 불린다. 사실이다. 최근 수년 동안 인수합병 시장에선 이랜드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분야도 가리질 않았다. 패션 브랜드부터 호텔과 골프장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심지어 LA다저스 인수전에도 명함을 내밀었을 정도였다. 이랜드는 패션 일변도의 사업구조를 의, , , , , 락까지 모두 6개 사업군으로 확대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당연히 이랜드의 M&A는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단 이랜드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와 현금흐름과 신용등급은 언제나 걱정거리다. 사실 이랜드는 신용 시장에선 200%를 넘나드는 높은 부채비율과 30%가 넘는 차입금 의존도 때문에 이미 감시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이랜드는 M&A를 멈춘 적이 없다. 아직은 무너진 적도 없다.

 

비결은 이랜드의 마술 같은 현금창출능력이다. 푸마와 뉴발란스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드는 이랜드 특유의 턴어라운드 전략이 공격적인 인수합병의 원동력이다. 이랜드 같은 소매유통기업에서 현금창출능력이란 결국 장사수완이다.

 

보통 패션브랜드는 탑다운식으로 성장한다. 백화점에서 거리 상점으로 다시 시장으로 브랜드를 유통시킨다. 이건 패션 유통의 상식이다. 유행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랜드는 바텁업식 유행을 만들 줄 안다. 거리시장에서 백화점으로 옮겨간다. 이랜드는 대중의 눈높이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마케팅을 벌인다.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수요에 봉사한다.

 

게다가 이랜드의 유통망은 지방 중소도시의 중심가나 시장으로 거미줄처럼 분포돼 있다. 생활 밀착형 브랜드란 얘기다. 뉴발란스만 해도 일단 10대나 20대의 눈높이에 맞춘 중저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보통 10대와 20대의 유행의 최종소비자다. 사실 이건 1980년 이랜드가 잉글런드라는 이름의 작은 옷가게를 이대 앞에 냈을 때부터 이어져온 전략이다. 이랜드는 항상 거리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경청은 장사의 기본이다.

 

이랜드는 중국 시장에선 이롄이라고 불린다. 이랜드의 2013년 매출은 10조 원을 돌파했다. 중국 매출이 이랜드 성장을 견인했다. 이랜드가 중국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거리에서 답을 찾는 바텁업 방식에 있다. 이롄은 매주 중국 도시 곳곳에서 거리 패션 사진을 찍는다. 옷소매의 길이부터 바지의 색깔까지 꼼꼼하게 분석한다. 거기에 맞춘 옷을 출시한다.

 

여느 패션 브랜드들과는 정반대다. 패션의 수요는 첨단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 사실 다른 패션 브랜드들도 알고는 있다. 단지 그런 옷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패션 산업은 생산자의 욕망이 투영되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다.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든단 얘기다. 물론 패션은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은 옷을 소비자가 입고 싶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는 시장이다. 다만 그건 이랜드의 방식이 아닐 뿐이다.

 

이랜드식 역혁신이다. 한국에서 이랜드는 1990년대에 유행했던 브랜드였다. 이제 한국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브랜드로 이동했다. 이랜드는 중국의 2000년대와 한국의 1990년대를 똑같이 놓고 접근했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1990년대 한국 소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랜드에 열광했다. 그들의 눈높이엔 H&M이나 자라보단 이랜드가 맞았다.

 

이랜드가 계속해서 반보 뒤쳐진 듯한 해외 브랜드를 인수하는 이유다. 이미 한국에선 소비가 끝낸 브랜드지만 중국이나 신흥 시장에선 이제 수요가 생겨나는 브랜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혁신은 첨단 장치가 달린 선진국형 고가 제품보단 신흥국에선 거꾸로 기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은 합리적인 제품이 더 잘 팔리는 현상에서 온 용어다.

 

이제까지 패션 브랜드들 중에선 이런 리버스 이노베이션을 경영에 접목한 사례가 없었다. 이랜드는 한국 시장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있다는 걸 간파했다. 선진국의 유행을 이해하면서도 신흥국의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단 얘기다.

 

말은 쉽다. 사실 유행과 허세를 쫓기 마련인 패션 회사에서 역혁신을 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일반 제조업체에서도 제품 개발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역혁신을 거부하기 십상이다. 한국의 경쟁 패션 회사들이 자존심을 세우며 혁신 경로만 추격할 때 이랜드는 자존심을 버리고 역추격을 감행했다. 지금까진, 이랜드가 이기고 있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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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

 

 

지난 78일이었다. 미국 아이다호 선밸리에선 앨런앤코 미디어 컴퍼런스가 열렸다.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는 월스트리트의 IB 앨런앤코컴퍼니가 개최하는 비공개 경제경영 컨퍼런스다. 전세계 기술 리더들이 모여서 미래 산업에 대한 통찰을 나누는 자리다. 정상 회담만큼이나 파괴력이 큰 비정상 회담인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래리 페이지 구글 CEO도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에 초대받았다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래리 페이지 구글 CEO가 논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래리 페이지는 이재용 부회장한테 삼성전자의 탈안드로이드 전략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걸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최근들어 독자 개발한 OS인 타이젠을 탑재한 신제품을 여럿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특히 웨어러블 신제품에 타이젠을 집중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기어2, 기어2네오, 기어핏이 모두 타이젠OS가 적용된 웨어러블 기기들이다

 

2014년으로 접어들면서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완연한 포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수요 포화도 문제지만 기술 혁신의 천정도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으로선 스마트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들한텐 웨어러블 시장이 유일한 숨구멍이다. 구글글래스로 웨어러블 기기로 먼저 시장의 관심을 돌려세운 건 구글이었다. 삼성전자도 기어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웨어러블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마트폰 시장에선 단짝이었던 두 회사가 웨어러블 시장에선 동상이몽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서로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하고 넥서스폰을 만들면서 직접 하드웨어까지 제조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함께 타이젠OS를 개발하면서 소프트웨어 쪽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구글 동맹 체제의 균열은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공식적으로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전략은 투 트랙이다. 이미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도 갤럭시기어와 기어라이브를 출시한 상태다. 사실 구글 역시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실패로 결론내려진 상태다. 하드웨어 학습에 실패한 구글은 삼성전자의 대체제를 찾았다. 바로 LG전자였다

 

20142분기에 LG전자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6062억 원이었다. 20132분기와 비교해서 26%나 늘어났다. 역시 원인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선전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맡고 있는 MC사업본부의 2분기 영업이익은 859억 원이었다. MC사업본부는 20132분기 이후 3분기 내리 적자였다. 1년만에 흑자전환한 셈이다. 특히 2분기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1450만 대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LG전자는 2009년 애플발 스마트폰 혁신에서 뒤쳐졌다. 피처폰 시장에선 라이벌이었던 삼성전자의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LG전자는 구본준 부회장 체제가 시작되고 4년만에 처음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모양새다. G시리즈 덕분이다. 특히 현존 최강의 스마트폰으로 평가 받는 G33분기부터 미국 시장에서도 본격 판매된다.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G워치를 내놓으면서 삼성전자의 기어 시리즈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LG전자의 부활이 일부는 구글 착시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단 사실이다. 이제까지 스마트폰 시장은 구글이 어떤 하드웨어 제조업체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세력 균형이 달라져왔다. 초창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대만의 HTC가 주도권을 잡았던 것도 구글과 먼저 거래를 튼 덕분이었다. 팬택 역시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비해 한 발 앞서 구글의 안드로이드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정작 구글은 필요에 따라 하드웨어 파트너를 계속 바꿔왔다. HTC였다가 팬택이었다가 결국 삼성전자와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애플에 맞서려면 삼성전자의 기술과 속도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삼성전자와 구글의 갤럭시 안드로이드 동맹은 유통 기한이 다해가고 있다. 삼성과 구글 모두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는 내용이다. 정상에 선 삼성전자는 구글 없는 삼성 모바일 생태계를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위험하지만 당연한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타이젠OS에 중국의 바이두와 일본의 소프트뱅크를 참여시키면서 세 불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을 제조하면서 구글의 소프트웨어 전략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인 상태다. 구글은 삼성전자보다 LG전자에 한 발 먼저 최신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서 견제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의 동맹에 균열이 생기면서 LG전자한테도 마침내 기회가 왔다. 동시에 위기다. 삼성전자가 타이젠을 포기하고 구글과 다시 동맹을 강화하면 LG전자는 외기러기 신세가 된다. LG전자가 구글의 제조 하청업에 머물면 결국 헌신짝 신세가 된다. 과거의 HTC와 팬택이 그랬듯 말이다. LG전자와 구글의 밀월에도 유통 기한이 있단 얘기다. 게다가 글로벌 스마트폰 산업의 지각 변동이 머지 않았다. 새로운 혁신이 애플 진영에서 일어날지 삼성과 타이젠 진영에서 일어날지 구글과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일어날지는 혹은 제3지대에서 일어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LG전자한테 럭키가 더 필요한 이유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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