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개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오랜만입니다. 김동조와 신기주의 팀블로그 '잡담'을 새로 리뉴얼해서 첫 글인 <개헌,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포스팅합니다. 어제 WSJ 한국어판에는 저희의 잡담의 칼럼 버전인 < 한국의 공유경제, 포장지뿐인 혁신을 공유하다, 링크>가 포스팅되었습니다.  '공유경제'를 주제로 저희가 나눈 잡담의 축약버전이라 밀도는 높은 내용이지만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혹시 원래 나누었던 긴 버전의 잡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으면 이곳에 다시 포스팅하는 방법도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잡담은 읽어 보면 알겠지만 두 사람의 의견이 특별히 많이 다릅니다. 그것이 이 공간의 재미이고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견이 없고 재미도 없다면 잡담을 할 이유가 없겠죠. 둘이서 재미로 시작한 일이 조금은 진지해지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블로그 리뉴얼에 애써주신 Alexa님께 마음의 장미꽃 한송이를 드립니다. 수고해 주신 덕분에 저희 '잡담'이 '대담'처럼 보이게 됐네요. 

 


1. 개헌은 필요한가?

 

신기주(이하 주) (강한 말투로) 개헌해야지요.

 

김동조(이하 조) (잡담도 오랜만이면서 또 내각제 얘기냐고 지겨워하며) 해야될까요?

 

해야됩니다. 지난 10월 29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여야지도부를 만났잖아요. 그때도 서두는 개헌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1면 제목을 “대통령은 경제, 야당은 개헌”이라고 뽑았더군요.

 

(웃으며) 동아일보는 대통령 편이군요.

 

프레이밍이죠. 왜 보수 언론이 개헌을 그렇게 프레이밍하려고 할까요? 역설적으로 현재 개헌이 정국의 급소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경제를 살리자고 말하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의 근본적 구조개혁이 필요합니다. 최경환 부총리도 현재의 양적완화는 기조는 근본적 구조개혁을 위해 환자의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변명하잖아요. 그런데 경제의 근본적 구조개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정치구조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치개혁이 곧 경제 개혁인거죠.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일단 받아준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야 이 시점에서 개헌이 논의될 경우 자기 정치를 할 수 있는 모멘텀이 상실될까 두렵겠죠.

 

현직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다 그랬죠. 결국 개헌이슈를 뒤로 미뤘죠. 집권 후반기에 지지도와 인기도가 최상에 이르렀을 때를 개헌을 하겠단 구상을 했죠. 정작 어느 누구도 집권 후반기에 인기 있는 대통령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왜냐? 현행 대통령제에선 집권 후반기에 국정 지지도와 인기가 높은 대통령은 나올 수 없거든요.

 

그래도 전 야당이 이 시점에서 개헌을 이야기하는 의도가 좋게 보이지만은 않네요.

 

야당은 왜 개헌을 이야기한 걸까요? 그 의도엔 왜 문제가 있을까요?

 

2. 개헌 논의의 당리당략인가?

 

현재 소속 국회의원수나 정국구도상 야당도 개헌을 추진하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런데도 굳이 개헌을 들고 나온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힘을 빼놓으려는 의도가 더 큰 게 아닌가 싶어요. 정말 개헌을 하고 싶어한다기 보다는.

 

(어느 정도 동의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개헌 논의가 당리당략적이란 거죠?

 

그렇죠. 야당도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의 개헌이 가능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테니까요. 또 과연 국민이 개헌을 원하는가 하는 의심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현실 정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주목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개헌으로 해소될 거라고는 믿지는 않아요.

 

(신음소리) 합리적 의심이네요.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구 친이계 의원들이 개헌을 앞장서 주장하는 건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덮고 이른바 사자방 조사 국면을 돌파하려는 의도도 엿보이는 게 사실이니까요.

 

제대로 된 형태의 개헌이 무엇인가에 대한 컨세서스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답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도 들어요. 서로 이해관계가 너무 첨예하고 다르기 때문에 결국 그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정치개혁의 의도가 굴절될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합의점에 도달할 순 있겠지만 정작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게 아니라, 기득권 정당들이 서로의 이해득실만 따져서 만든 기형적인 형태로 귀결되지나 않을까 싶네요.

 

(십분 동의하지만 티를 안 내려고 애쓰며) 반박을 해볼께요. 우선 국회 안에선 이미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활동 중입니다. 모임의 구성원들도 여야를 막론합니다. 대통령 중임제부터 분권형 대통령제부터 내각제까지 주장은 제각각이지만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서 국회 개헌특위 구성요구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나름 구체적이긴 하네요.

 

그러니까 여야를 막론하소 현행 대통령제에 대해선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현재 여야의 지도부인 김무성 대표와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모두 개헌론자들이죠. 국회에서 개헌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무르익은 적이 있었던가 싶어요. 심지어 양당 지도부들까지 개헌론자들인데도 개헌은 커녕 개헌 논의조차 못한다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국회의 요구를 대통령과 청와대가 경제 위기론 프레임으로 막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정치개혁이 곧 경제개혁인데도 말이죠.

 

정치개혁이 왜 경제개혁인가요?

 

정치개혁이 곧 경제개혁입니다. 왜냐? 국민이 개헌을 원하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국민들이 원하는 거야 물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거죠.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를 경제가 해결해준다고 믿는 게 착각이란 겁니다.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는 정치가 해결해줘요.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라고 했었죠. 안 됐어요. 왜 안 됐을까요?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결국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는 정치권력이 경제권력한테 포획돼 있죠.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으면 대통령은 국민한테만 빚이 있으니 재벌을 비롯한 경제권력을 견제할 있어야 하잖아요. 실제론 집권 이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대통령이 재벌들과 손을 잡아버려요.

 

그게 대통령의 문제일까요, 대통령제도의 문제일까요?

 

제도는 사람이 만들지만 동시에 제도가 사람을 만들죠. 대통령도 사람이고.

 

대통령이 될 가망이 없는 국회의원들은 죄다 내각제를 원해요.

 

(동의할 수 없다) 내각제는 무조건 당리당략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시네요.

 

내각제는 국회의원들의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과연 헌법의 어느 규정을 고치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정치개혁이 가능할까요?

 

 

3. 대통령제는 문제가 있는가?

 

대통령제 중심주의를 깨야죠. 김무성 대표가 상하이에서 개헌 발언을 했었잖아요?

 

바로 꼬리를 내렸죠.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를 억누르는 과정에서 대통령제의 폐단이 드러났다고 봐요.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나버렸죠. 여당의 대표가 소신 발언을 했더니 대통령이 권위적인 방식으로 묵살해버린 거죠.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모두 국민이 선출한 대의 권력자들이죠.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는 게 아니에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따를 뿐이죠.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제에선 의회는 늘 입법 기계일 뿐이었어요.

 

그게 대통령제 탓이다?

 

물론이죠. 현행 대통령제에서 의회는 둘 중 하나의 모습만 보이게 돼 있어요. 대통령의 인기가 높으면 대통령의 입법 보좌기구고 대통령의 인기가 낮으면 대통령의 정적이 되죠. 어차피 정치는 대통령이 이끌어가기 때문에 의회는 정치 대신 재선에만 몰두하게 되는 거죠. 사실 정치는 국회에서 이뤄져야 해요. 의회에서 갑론을박을 벌여서 결론을 내 버릇 해야 하죠. 지금은 대통령 권력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의회가 대의기능을 상실하고 망각해버렸어요. 너무 오랜 시간 그렇게 방치돼 있다 보니까 지금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는 지경이 이른 거죠. 정치의 실종이 일어난 겁니다.

 

대통령제가 정치를 망친다?

 

물론이죠. 현행 대통령제에선 모든 대통령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집권할 때 약속했던 공약들을 하나씩 뒤집는 게 공식처럼 돼 버렸잖아요. 왜냐? 직선제 아래에서 집권하려면 유권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죠. 경제민주화든 규제완화든 수용해야죠. 집권 하고 나면 5년 뒤에나 표를 줄 유권자들보단 정치경제적 이익집단들이 국정 운용에 더 필요해지죠. 그런데 이익집단들의 요구는 유권자들의 요구와 상충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대통령은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지지기반을 배신해나갑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예외가 없이 이 길을 갔어요.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그런데요?

 

이때 자신의 유권자를 배신한 대통령이 기댈 곳은 의회 밖에 없어요. 어쨌든 의회의 도움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용이 불가능하니까요. 적어도 의회의 지지를 확보하면 대중적 비판을 받아도 그걸 외면하 수 있죠. 결국 대통령은 국회를 장악하려고 들게 됩니다. 국민의 대의 기관으로서 정치 토론이 활발해져야 하는 국회에서 토론이 사라지고 대통령 거수기들만 남게 되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와 국회의 개헌 논의를 묵살하는 걸 보면서 오히려 개헌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꼈어요.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게, 미국도 상당히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지만 과연 그 미국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르면서, 의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며 헌법적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미국은 대외적으론 대통령 중심제로 보이지만, 내치에 있어서는 상당히 분권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어요. 각 주마다 주지사의 내치 권한이 굉장히 강력하고, 연방 의회와 주의회의 영향이 상당해요.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 대통령제에서 의회의 기능과 지방분권을 빼버린 형태죠. 권위주의 독재를 거치면서 한국의 대통령제는 지나치게 비대해졌어요. 그 단적인 예가 정부입법이죠. 미국은 입법을 하나 하려면 의원들을 찾아가서 설득해야 합니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의회와의 소통창구를 열어놓게 되죠. 그런데 한국은 대통령이 의회를 우회해서도 얼마든지 입법도 하고 정치도 할 수 있어요.

 

그런가요.

 

(약간 울컥하며) 도대체가 대통령하고 여야대표들이 국회에서 밥 한 번 먹은 게 신문 1면에 난다는 게 말이 됩니다. 일상적으로 만나야죠. 하도 안 만나니까 그게 뉴스래요. 뭐 이런 정치가 다 있어요. 미국은 백악관과 여야지도부의 소통 창구가 항상 열려 있어요. 대통령이 아쉬워서. 대통령이 자기 정치를 하려는 항상 의회와 소통을 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말하는 것이 법률의 불비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법적인 영역 밖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의식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 헌법도 여러 가지 선진국의 사례에서 좋은 점을 고려해서 만들었죠. 과연 우리나라의 헌법적 결함 때문에 정치가 후진성을 띄게 된 것인지, 헌법을 고치면 갑자기 정치가 선진화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헌법만 고치만 국회와 대통령이 자주 만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 차원의 토론이 이루어지며 현명한 결론이 도출될까요? 저는 개헌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의 무의식에는 내가, 또는 내가 지지하는 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으니 내각제 세상이 와야 내가 조금이라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4. 개헌만큼이나 개헌논의가 필요하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다만 지금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정략적 측면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읽혀요. 여야에서 대통령중심제인 현행헌법을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야당의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희상 위원장이고, 또 한 명이 이명박 정부 때 실세라 불렸던 이재오 의원이죠?

 

둘 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는 정치인들이죠.

 

동시에 전임정권을 운영했던, 혹은 그 정권에서 실세였던 사람들이죠. 그들 자신들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주장한다고 할 수도 있겠죠. 동시에 기본적으로 정부를 운영해봤던 사람들이란 겁니다. 현행 대통령제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해봤으니 안다?

 

다만,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입장이라 대통령이 그걸 원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지만, 지금은 그런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죠. 장담할 수 있어요. 박근혜 정부가 끝나고 나서 박근혜정부의 실세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시 개헌을 이야기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정권을 놓쳤기 때문이 아니라 현행 대통령제로는 힘들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는 거죠.

 

계속 이야기해보시죠.

 

두 번의 정부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또, 한 번의 정부를 거치면서 또 배우고 또 시간을 낭비해야 되냐는 거예요. 결국은 지금 모두가 다 개헌에 대해 심정적으로 공감하는데, 대통령 혼자 버티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버티는 방어논리 중 하나가 경제가 살리기가 급하다는 것과, 당신들은 대통령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 이렇게 두 개죠. 이 두 개 프레임은 깨져야 마땅한 것 같아요. 반대를 위한 반대 논리에 가깝거든요. 개헌자체에 대해 들여다보지도 않고 정략적이라고 얘기해버리면 안되죠. 개헌은 필요한 측면이 분명이 있고, 논의해야할 측면이 있는데.

 

개헌만큼이나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현행 대통령제와 정치에서 어떤 부분이 꽉 막혀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개헌까지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개헌을 논의함으로 해서 정치개혁을 공론화시킬 수 있다는 거죠. 그것도 개헌논의의 장점이거든요. 그런데 논의 자체를 막는 거죠. 그러면서 끊임없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요. 앞뒤가 안 맞지요. 정치를 풀어줘야 경제가 풀리는데. 결국은 정치개혁이 경제개혁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야당이 원하는 개헌과 여당이 원하는 개헌이 같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래서 논의야 할 수 있고,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정치적 의미들을 발견해볼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개헌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가깝게는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 임기 시절에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원했던 거였는데, 과연 4년 중임제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바람직한 개선이냐, 그것 조차도 잘 모르겠어요.

 

4년 중임제는 지금도 많이 이야기되는 것 중 하나죠. 하지만 노대통령 후반에 4년 중임제 개헌이 나왔던 이유는 집권 후반이라 원 포인트 개헌 말고는 할 수 있는 정치적 여력이 안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노무현대통령도 정치 일정상에 개헌이 있었는데 개헌을 미뤘죠. 사실 노무현대통령은 자신이 중도까지 포괄하는 형태의 다수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특히, 탄핵 직후에 열린 우리당이 다수당이 되었을 때는 그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에 국정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는데, 만약에 노대통령이 탄핵 역풍을 맞아서 열린 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는 형태의 로또를 맞지 않았다면 아마 십중팔구 개헌을 했을 거예요. 이원집정부제 같은 형태로. 왜냐하면 본인이 소수파 대통령이라 국정운영이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랬을지도 모르죠.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노무현대통령은 스스로 대통령직을 그만할 생각도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권력을 내려놓는 게 가능했겠죠. 박근혜대통령과 이명박대통령은 비슷한 함정에 빠져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믿고 있는 30%의 지지층 덕분에 그 외 많은 현안을 미루고 경제 성장하는데 올인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정치가 풀리지 않으면 경제가 풀리지 않는데, 왜 정치문제를 왜 풀려고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다시 이야기하지만 여야 지도부와 대통령이 국회에서 만난 게 왜 1면 탑이냐고요. 미국정치에선 흔한 일인데 말이죠.

 

5. 일본판 내각제냐? 독일판 내각제냐?

 

물론 여러 가지 제도적 개선을 위해 정치적 개혁이란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겠지만. 과연 우리가 경제 정책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 이원집정부제나 4년중임제나 의원내각제가 아니기 때문일까요? 개헌이 되지 않으면 경제정책이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개헌이 되면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나 거시정책이 제대로 추진될까요? 저는 몹시 회의적이에요. 예를 들어서 의원내각제를 하고 있는 일본이 제대로 된 경제개혁과 거시정책이 이루어졌나요? 독일처럼 총리의 역할과 대통령의 역할이 분권화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유로 통합과 유로 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독일 경제를 살리는 형태의 경제 정책들이 '분권적으로' 고민되고 있나요?

 

개헌 논의라는 건 단순히 대통령이 정상이냐 총리가 정상이냐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결국 정치 구조 개혁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제도 자체를 개혁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는 선거구조 개혁과 권력 구조 개혁이죠. 그러니까 지금 현재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지역 구조를 깨야 된다는 논의가 있는 것이죠. 개헌이라는 것 안에는 사실은 정치구조권력의 개혁이라고 하는 과제가 숨겨져 있는데, 우리는 그걸 개헌이라고 표현하게 되는 것이죠.

 

개헌은 정치 구조 개혁의 첫 단추다?

 

꼭 대통령의 권력만 줄여야 된다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의 수나 또는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이나 이런 것도 바꿔야 한다는 거죠. 사실 이미 답은 있어요. 이원집정부제 상태에서 중대구선거구제로 바꾸고, 비례대표 정당명부제를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국회의 성격도 바뀌고 청와대 권력의 성격도 바뀌기 때문에 권력의 흐름이 바뀌는 거죠.

 

그런데 그 흐름이 바뀌는 것이 좋은 면만 있느냐는 거죠. 예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중대선거구제로 가서 선거구가 늘어나고, 지금보다 선거구의 크기가 커지고 당선자도 많아지는 형태잖아요. 정치적 소수파도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형태로 가는 건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으니 좋은 면이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일개 정당의 독주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단호하게) 전 된다고 봐요. 전 사실은 일개 정당의 독주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각제라고 생각하지만, 중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 정당명부제 같은 경우가 상당히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해요. 룰을 바꾸는 거니까요.

 

유럽의 경우는 중대선거구제와 의원내각제를 하는 나라가 1개 정당의 독주를 막는데 성공하지만, 일본을 생각하면 의원내각제를 하고 있지만 1개 정당의 독주가 거의 반세기동안 유지됐는데 과연 그게 정부형태의 문제일까요.

 

 

사실 독일하고 일본의 정치에 대해서는 우리도 얕은 지식으로 논의를 할 수 밖에 없어서 부끄럽긴 합니다만, 그냥 편하게 이야기한다면, 내각제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일본처럼 되는 건 아닙니다. 일본은 내각제의 나쁜 사례거든요. 독일처럼 될 수도 있어요. 독일은 양쪽에 치우친 극우정당 등을 배제하는 형태의 정치문화와 제도가 정착되어 있는 나라죠. 그건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나치의 경험 때문일 테고요. 일본의 경우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고요. 우리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죠.

 

우리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전 대충 알 것 같아요. 전 대선에서는 진보 정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지만 총선에서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만약 의원내각제적 권력구조로 개헌된다면 대형 극우정당이 탄생한 후 적어도 백 년 이상 장기 집권 할 것 같아요.

 

그건 이번 개헌 논의에서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저는 사실 박근혜 정부가 해낼 수 있는 것은 개헌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국정 아젠다는 사실상 거의 없죠. 청와대 안에서도 이미 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시도들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판국이고요. 실제로 2년 동안 국정 아젠다 중에서 제대로 추진한 건 아무것도 없죠.

 

6. 한국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그런데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2년 동안 제대로 된 국정 아젠다를 추진하지 못한 것이 헌법적 제도의 문제 때문이냐, 아니면 대통령 개인의 무능 때문이냐, 하고 생각해봤을 때 저는 후자가 훨씬 강한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서 이건 노무현대통령도 마찬가지예요. 노무현대통령이 제대로 본인의 아이디어를 펼치지 못한 것이 제도적 문제 때문이냐, 아니면 본인의 무능 때문이냐. 전 역시 본인의 무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개혁 문제,  종부세를 포함한 제도 개혁문제, 행정수도 이전 문제 이런 모든 것들을 포함한 여러 정책들 둘러싼 혼선과 실패와 판단 착오가 과연 헌법의 책임인가 하는 거죠. 그건 그냥 계속 끊임없이 잘못된 판단의 연속 아닌가요?

 

아니요. 이럴 수 있어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핵심 정책 중에 하나가 부채주도형 성장이잖아요. 어쨌든 간에 부동산 정책을 쓰고 있죠.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소비지수가 막 떨어지고. 사실은 금리를 낮춰도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죠. 그런데 왜 부동산을 키우고 싶어 하느냐. 물론, 한국의 가계의 상당한 자산이 부동산에 있고, 부동산가격이 올라야 하겠죠. 이건 경제 안에서의 설명이에요.

 

그런데요?

 

그걸 정치적으로 설명을 할 수도 있어요. 지금 최경환부총리는 현역 국회의원이죠. 경북 경산시 청도군의 지역 국회의원. 이런 지역 국회의원들한테 가장 중요한 이슈가 뭘까요? 지역에 내려가 보면 가장 큰 현안은 아파트값, 부동산 값이죠. 결국, 중앙에서 바람이 불어넣어야 할 때는 각 지역구마다 국회의원들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염두에 두고 경제정책을 써야 할 텐데, 그게 바로 부동산인 거예요. 결국은 지역구에서 뽑힌 한 명의 국회의원이 듣고 있는 여론이라는 건 부동산 가격의 부양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면 그게 위로 올라가거 초이노믹스 같은 경제 정책으로 활용되는 것이고요. 이게 가장 효과적인 정책의 순환고리죠.

 

정책의 순환이라.

 

그런데 중대선거구제 또는 정당명부제를 할 경우, 어떤 국회의원은 부동산 값을 올리라는 다수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을지 모르지만, 어떤 국회의원은 환경을 지키라거나 또 다른 가치를 주장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국회의원이 됐을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국회를 이루게 되면, 국회내부의 여론이 바뀌고 정책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영향을 미치겠지만 아주 미미한 영향일 거에요.

 

사실 현행 대통령제나 국회의원 구조의 방향은 대의제에도 어긋나요. 51대 49로 표가 갈렸을 때, 49의 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표가 되는 구조잖아요. 이게 현재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이유죠. 내가 분명히 유권자로서 투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가 나오는 거니까요. 그게,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표적이었고, 총선 때도 늘 나오는 이야기예요. 한명 밖에 뽑히지 않는데, 그 한 명은 한 가지 정책 이슈만 대변하니까요.

 

그런 면이 있기는 하죠.

 

사실 지역의 정책 이슈는 여러 가지의 니즈가 있을 수 있는데, 그 니즈를 다 묶어서 국회 안에 묶어놔 주어야 정부에서 그 정책 니즈를 반영해서 정책을 만들 수 있죠. 지금 구조에서는 최경환부총리처럼 부채주도 성장을 하는 정책 말고는 나올 수가 없어요. 왜냐면 지역 정치에 요구하는 것도 그것 밖엔 반영이 안 되거든요. 여론의 한쪽 면만 반사시키는 거울을 놓고 이면은 왜 반영이 안 되느냐가 물으면 안 되죠.



   7. 경제 위기는 제도 탓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아요. 첫째,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을 펼치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에 헌법의 구조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요. 세계적으로 부동산 버블이 창궐했던, 리만 사태가 일어났던 즈음의 세상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과연 대통령 중심제를 한 국가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창궐하고, 의원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국가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없었느냐.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미국보다 부동산버블이 훨씬 심했던 나라가 영국이에요. 영국의 부동산 버블은 정말 살인적인 수준인데, 사실 런던은 지금도 엄청나게 집값이 오르는 곳이에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영국도 내각제 더하기 소선거구제의 나쁜 결합의 사례잖아요.

 

그러니까 독일,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일본을 뺀 거의 모든 선진국이 리만 사태 직전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는데 그것을 경제적인 문제로 봐야지 그게 단순히 집값을 부양하려는 정치적 의지로 집값 상승과 집값버블을 야기했다고 보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어느 정부의 형태를 취하는 지와 큰 상관없이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는 거시 경제 정책을 취했다면 집값 상승 자체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런 정책적 현명함이라는 것은 그 국가의 전체적인 역량으로 나타나는 거지. 결코 정부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져요.

 

 

제가 느끼기에 이사님 논리라면 국민의 역량이 아니고, 특정한 정치인 개인의 심성과 판단, 결정력이 중요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굉장히 중요하죠.

 

네, 물론 상당히 영향을 미치기는 하죠.

 

그리고 아까 51대 49의 구도에서 경우 49의 역량이 무시되는 것이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51대 49로 당선된 대통령이 전체를 통솔하는 리더십을 행사하는 국가보다, 51대 49로 당선이 되었으니 대통령은 51만큼의 리더십을 가지고 49만큼의 목소리는 다른 쪽 진영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식으로 끌고 가는 나라의 리더십이 더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거든요. 예를 들어서 1대 0으로 축구를 이긴 것과 10대 0으로 축구를 이긴 것이 다르게 평가 받아야 하느냐. 한쪽은 1승으로 평가 받고, 다른 한쪽은 10승으로 평가 받아야 하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건 그냥 승부의 속성일 뿐이죠.

 

글쎄요. 물론 정치는 승패가 있는 필드지만, 스포츠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49대 51로 당선이 되었으니 51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정치적 리더십을 행사한다면 정치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의원 내각제처럼 각기 승리한 정치적 지분을 가지고 대화와 타협을 해가는 나라들이 항상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느냐. 사실 아노미 상태가 되는 경우도 많죠.

 

뭐, 이탈리아의 경우가 그렇죠. 하지만 독일 같이 다른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하는 건 특별히 민주국가로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헌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어떻게 끌고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데, 저는 지금 우리나라 헌법 구조가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 그래요?

 

8. 정치가 자본주의의 형태를 결정한다?

 

그리고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문제를 개선하는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에요. 특히, 통일을 앞둔 상황에서 어차피 헌법을 바꿔야 할 텐데 굳이 지금 타이밍에, 일본형 디플레이션에 들어가는지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인 지금 과연 어차피 하지도 못할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에 어떤 정치적 의미를 얼마만큼 부여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글쎄요. 대중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할까요.

 

사실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다수의 대중들에게 그걸 어떻게 보여주느냐의 문제죠. 예를 들면 현직 대통령이 개헌이야 말로 경제 살리기입니다, 라는 말로 프레임을 보여주면 국민들이 그걸 믿게 되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그걸 안 믿어요. 야, 헌법 개헌이 어떻게 경제 살리기야. 그거는 그냥 헌법개헌이지, 라고 말할 겁니다.

 

사실은 이사님을 조금 설득해보고 싶은데요.

 

네, 저를 한번 설득해보시죠.

 

87년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87년 체제라는 것은 87년에 만들어진 헌법을 기준으로 한 체제잖아요. 다시 97년 외환위기로 87년 체제는 97년 체제로 뒤틀려졌죠. 그 이후에 한국은 정부권력이 시장과 기업으로 이행되는 과정을 거쳐요. 어쩌면 이사님은 그건 당시의 신자유주의 흐름에서 한국도 그 흐름에 포괄된 것이다, 라고 할 수도 있어요.

 

글로벌한 현상이죠.

 

그것도 분명히 맞는 설명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수도 있어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랑 결합해서 발전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민주주의 상태가 아니었다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공생하는 시스템은 자본주의잖아요. 그 중에 시장 자본주의 시스템인 거죠. 87년 이전에는 국가 자본주의 시스템이었다가 시장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현행 민주주의 제도와 직선제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두 시스템은 공존공생하면서 서로 발전하는 것인데요. 세계적인 흐름이 신자유주의에 있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이행이 시장자본의 흐름을 선도한 측면도 있다고 봐요.

 

어느 정도는 그렇죠.

 

87년 체제 이후에도 계속 대통령이 직선제가 아니었고, 국회의원들을 제대로 뽑지 못하는 독재 상태가 계속 유지됐다면 지금과 같은 시장자본주의 형태로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했을 거예요.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정치제도의 발전이 시장의 형태를 변화시킨다는 거예요.

 

정치 제도가 시장의 형태를 바꾼다?

 

정치가 자본주의의 형태를 바꿉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변화된 시장이 필요하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지금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에 빠져들 위험에 있어요. 디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을 하지만, 사람들이 살 의욕이 없는 거잖아요. 살 욕망도 못 느껴요.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죠. 인플레이션은 항상 사람들이 무한한 욕망을 느끼는 것이고, 디플레이션은 항상 사람들이 별다른 삶의 욕망을 못 느끼는 상태인 것인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물건도 안사고, 값이 떨어지고 에너지가 죽어가는 거죠. 그것을 불 지필 수 있는 방법은 정치에서 사람들에게 에너지와 열기를 불어넣어 주는 거거든요. 그것들을 87년에 한번 했었고, 2015년 16년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이 체제를 바꾸면 자본주의의 형태가 바뀐다고요.

 

저는 헌법체제를 바꾸면 자본주의 체제가 바뀐다는 것에 별로 동의를 하지 못하겠어요. 우리나라가 지금과 다른 헌법 체제를 가지고 있으면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을까요. 일본이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원인은 디플레이션에 빠진다는 경제적 결과에 둔감했고, 그걸 막을 경제적 혜안이 없었으며, 설령 그 혜안을 알고 있어도 실천할 행동력이 없었던 거죠. 경제가 왜 디플레이션으로 가냐, 디플레이션을 막을 정책은 있느냐, 이론적으로는 있다고 보여질 때도 있죠. 그럼 모든 정부가 그 정책을 쓰느냐? 그렇진 않죠. 그러면 왜 그런 정책을 안 쓰냐.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있죠. 그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헌법체제를 바꾸면 복잡한 이해관계가 풀어지고, 정책적 판단을 현명하게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느냐. 제가 볼 때 세상에 그런 시스템은 없어요.

 

(한숨) 저도 완벽한 체제가 없다는 건 동의해요. 다만 한국에 걸맞는 정치와 자본주의 체제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고는 생각해요. 정치의 진화가 이대로 멈춰있게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경제도 퇴화해요. 그게 일본입니다.

 

9. 개헌이냐 개악이냐?

 

결국, 국민적인 역량을 가지고 그 시스템을 만드는 거겠죠. 예를 들어서 방금 말한 것처럼 87체제는 87년 국민의 컨세서스를 담은 헌법이고 당연히 지금과 정서적 괴리가 있을 수는 있어요.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지금 정치적 갈증이 무엇이고 어떤 정치적 해법이 있을 수 있는가를 백지 상태부터 논의해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설령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헌법 체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여야 합의로 달성 가능한 것이냐는 회의적이에요.

 

현실성이요?

 

네, 현실성의 면에서 여야가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성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고요. 일단 제가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금 이사님이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예를 들면, 실력 있는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요. 망치대신 포크레인만 있었어도 제대로 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제도 자체만으로는, 제도가 바꾼다고 좋은 세상이 오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사실은 개헌론자들조차도 국민들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죠. 이건 뭐냐면, 통일 대박론하고 비슷해요. 통일만 된다고 좋은 세상이 오는 건 아니겠죠. 가능성이 열릴 뿐이죠.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제도 개혁은 그 가능성이 열리는 희망을 줄 수는 있어요.

 

희망?

 

일본 케이스에서도요.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일본에서 총리 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있었어요. 권력이 지나치게 우경화된 자민당 독점 체제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의 역동성이 사라진 거죠. 그 역동성을 지금과 같은 내각제에서 찾을 수 없는데, 총리 직선제에서는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나온 이야기도 그거예요. 정치체제가 바뀐다고 뭐 달라지냐. 정치인들은 똑같은데. 어차피 그들이 해먹는 거지. 그러면 일본에서 총리 직선제가 나왔으면 일본이 달라졌겠느냐. 그것만으론 불충분하죠. 하지만 그 변화의 과정 자체에서 새로운 에너지와 역동성이 생겼을 거예요. 일본은 그 상황에서 바꿔봐야 소용없다, 로 정리했죠. 그리고 정치권 내부에서도 시스템을 바꾸는 게 본인들한테 불리하기 때문에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힘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총리 직선제?

 

제가 보면 지금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현행 정치제도가 소선거구제에서 지역 유지처럼 활동하고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고, 막강한 권력기관을 이용해서 선거에도 개입하고 국민의 사생활도 캘 수 있는 대통령제가 일단 권력을 잡고 나면 매력적이기 때문에 두 권력욕이 결합되어서 제도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별로 설득을 하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사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핵심은 이원집정부제도 아니고 내각제도 아니고 정치 변화에 대한 역동적 희망이거든요. 그 희망이 필요해요. 결국은 그 희망이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도 바꿔줄 거라고요. 87년에도 그랬고요. 대통령제가 된다고 세상이 좋아진 건 아니었죠.

 

그러니까 신기자님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개헌체제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체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모멘텀을 만들고 그 모멘텀이 결국 정치개혁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냥 소란만 피우다 말 것 같아요. 지금 여당에서 개헌을 들고 나온 건 박근혜의 레임덕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의미고 야당에서 개헌을 들고 나온 건 박근혜의 힘빼기 전략일 뿐이 아닌가. 만약 서로 모르는 척하고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면 그 정치적 결과물로서의 헌법은 여도 야도 만족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제 현실성이야기를 할 텐데 가장 최악의 경우는요. 개악이 되는 거죠. 헌법의 핵심적인, 87년 체제의 장점은 다 빠지고 단점만 남아있는 대통령제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될 수도 있죠.

 

10.대통령 4년 중임제?

 

많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공감하는 개헌조건 중에 하나가 4년 중임제가 있어요. 노무현대통령도 4년 중임제를 원했고, 미국도 4년 중임제죠. 5년 단임제 아래서 과연 누가 임기 말에 제대로 권력을 행사하며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있겠느냐. 게다가 한번하고 말 건데 누가 그렇게 열심히 하겠느냐. 당연히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4년 중임을 달성한 대통령 중에 퍼포먼스가 좋았던 대통령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당선이 되는 거예요? 재선에요.

 

전반부 4년이 좋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레임덕을 4년 하는 거예요.

 

(웃음) 오바마네.

 

그리고 미국의 경우 임기 8년을 채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뭐, 단임도 많죠. 부시하고 카터.

 

그러니까 되게 삐리리한 사람들이죠. 우리나라도 아마 4년 중임제를 하게 되면 결국 8년 단임제를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죠. 사실 저는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큰 매력은 못 느껴요. 왜냐하면 현행대통령제의 수없이 많은 모순들을 8년짜리로 연장하는 거 말고는 아무것 밖에 안 될 거고.

 

그래서 저는 사실 김문성 대표가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것은 본인의 힘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지금 이 마당에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건 이미 박근혜의 레임덕은 시작된 부분도 있다고 보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대통령은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본인이 권력을 실제적으로 장악하는 총리를 하겠다는 그런 뜻으로 보여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봐요. 두 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해야 하는데 하나는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제 대통령의 명령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의 크기는 넘어섰다는 거죠. 이미 시장이 정부의 크기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수장 정도 밖에 안 되는 대통령이 명령을 내린다고 뭐가 바뀌어요.

 

그런데 시장이 정부를 압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저는 시간이 갈수록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 현재, 박근혜대통령의 정책 기조 중에 하나는 정부의 파워가 시장을 압도할 수 있을 거라 믿는 데서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대통령인 것 같아요. 시장의 역할이 정부를 압도하거나 아니면 정부를 무시하거나 정부 밖으로 나가서 정부하고 안 놀려고 하죠. 이건 현대 국가의 일반적인 흐름이기도 한데요.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명령을 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보고요.

 

그런데 그런 상황라면, 과연 특정한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는 의원내각제나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이원집정부제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시장을 통제할 필요가 없죠. 정부는 사실 이제 명령을 내려서 통제하는 게 아니라 운영하면 되는 거예요. 대통령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없이 많은 문제 중에 하나는 대통령이 되고 나면 정부가 어떻게든 국가 시스템과 시장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수없이 많은 경제적 아젠다를 던지잖아요. 그런데 그런 정책들이 시장을 이겨내느냐. 수없이 많은 혼란만 야기하죠.

 

그런데 저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국가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어느 정도 개입은 할 수 있겠죠.

 

의원내각제 아래서 다양한 정당들이 서로 자기의 이익집단을 대변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걸 상상해 보죠.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들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재벌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이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탈북자들이 만든 집단은 극우 반북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외 수 많은 정당들이 난립한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통합될 수 있을까요. 영국의 모델로 갈 건지, 아니면 이탈리아의 모델로 갈 건지. 전 당연히 이탈리아 모델로 갈 것 같아요.

 

우린 독일로 갈 수도 있어요.

 

(쓴 웃음을 지으며) 독일로 갈 정도의 역량이 있으면 지금도 잘 하고 있겠죠.

 

(웃음) 독일이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었잖아요.

 

과연 우리나라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역량의 아쉬운 수준이, 개인의 부족한 역량의 총합이 국가적 역량의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헌법의 불비가 충만한 개인적 역량을 저하시켜 총체적 역량의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전자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현실성 이야기로 넘어가면요. 최악의 상황은 여야가, 요즘 거대한 정치인이 없는 시대니까. 땅꼬마들이 내각제를 만들거나 왜곡된 정치구조를 만든 다음, 자기들끼리 해쳐먹는 최악의 구도를 만드는 상황이 올 수도 있죠.

 

저는 그렇게 갈 것 같고 심지어 더 심한 상황도 생각하고 있어요.

 

 

 

11. 개헌 논의를 하면 경제가 망가지는가?

 

왜 개헌하고 경제하고는 양립할 수 없는 걸로 생각을 하죠? 물과 기름의 관계 같은 거예요?

 

소수의 정치인들 말고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소수의 정치인들은 의원 내각제로 갈 경우에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쉽게 말해서 총리부터 장관까지 모조리 국회의원들이 해먹을 텐데.

 

사실 이원집정부제가 유력하기 때문에 그건 좀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개헌을 하면 경제가 망가지나. 왜요?

 

  아니 물론 안 망가질 수도 있어요. 연애도 하면서 사시 공부해서 사시 붙을 수 있죠.

 

그런데 왜 개헌을 하면 경제가 망가지는 것처럼 대척점에 놓는 거죠?

 

여기서 '사망토론'의 한 장면을 인용할 수밖에 없네요. 10년 만에 사시가 붙은 남자에게 10년 동안 뒷바라지를 해준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시가 되고 나서 재벌가에서 이 남자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망토론'이 벌어집니다. 과연 이 남자는 10년 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한 여자를 버리고 재벌가에 장가를 갈 것이냐. 아니면 10년간 뒷바라지한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여자친구를 택할 것이냐. 사랑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이렇게 물어요. “만약에 이 남자가 10년 동안 뒷바라지한 여자친구가 없었으면 이 남자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러니까 상대 쪽 패널이 이렇게 말합니다. “5년 만에 붙었겠죠.”

 

(웃음) 동의.

 

저는 그분이 재벌가에 장가를 가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5년 만에 붙었을 거라는 말에는 동의해요.

 

주 저는 사실 개헌이 경제회복을 늦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지금 이사님 말씀처럼 개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국민 대다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개헌을 하면 경제가 엄청 망가지는 것처럼 구는 것은 사실 역대 정권에서 반복되었던 프레임이거든요. 사실 역대 정권에서 경제가 좋았던 때가 언제 있어요? 항상 나빴지. 심지어 좋았던 때도 나빴죠. 사실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를 뒤로 미루기 위해서 항상 먹고 사는 문제가 앞에 있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국민들한테 먹고 사는 문제가 와 닿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 반대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수없이 많은 본질적 개혁을 미뤄왔던 게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원인이라고요.

 

근데 사람들은 본질이 개헌이라고 생각 안 한다니까요. 저를 포함해서.

 

사실 개헌이나 권력구조 개편을 하면 경제가 망가지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그걸 하면 망가지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숙제를 하지 않는 것이죠.

 

반대 아닌가요?

 

아니죠.

 

정책적 결과, 정치적인 결과에 대해 온전한 책임을 지지도 않으면서 개헌을 부르짖고 있잖아요. 지금 개헌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된 정치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냐. 대통령제 아래서 여는 야를, 야는 여를 존중하면서 제대로 된 정치적 발언과 제대로 된 정치적 아젠다로 토론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냐. 저는 그렇게 안보이거든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현행 권력구조 안에서는. 그렇게 서로를 존중할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그게 싸가지 없는 진보에 나오는 강준만 교수의 논리지만, 결국은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자기의 아주 작은 영토 안에서 20%정도 밖에 되지 않는 유권자만 상대해도 충분히 당선이 되기 때문에 국회 안에 들어와 봐야 그렇게 뽑힌 사람들 투성이고요. 그런 구조 안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상생의 정치를 할 필요가 없죠. 상대방을 욕하고 까고, 때리고 미워하는 정치를 할수록 자신의 소수의 20% 유권자들은 자신을 지지하니까.

 

12. 혼란스런 진짜 정치와 질서있는 가짜 정치?

 

아니, 그런데 궁금한 것이 우리나라의 대통령. 최근 네 명의 대통령을 보죠. 그 대통령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과연 제왕적 대통령이어서 문제예요?

 

맞아요.

 

김대중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에요?

 

맞아요. 예.

 

노무현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예요?

 

그럼요. 어, 그럼요. 그럼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아니요. 아니요.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데요. 다만, 각각의 대통령들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죠. 노무현 대통령 때는 사실상 이해찬 총리에가 많은 권한을 위임하면서 집권 2년 차 이후에는 이원집정부제 형태에 가까웠었어요.

 

그런데 저는 갑갑함을 느끼는 것이 제도적으로 상대적으로 제왕적 성격이 있다고 쳐요. 그러면 그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도 그렇게 밖에 못한 거잖아요.

 

그게 바로 이 한국 대통령제의 이상한 모순이라고요. 한국 대통령은 분명 제왕적 권력을 쥐고 있어요. 수없이 많은 권력기관들을 통제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무언가 대단히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되죠.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아무리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가까이에는 의회가 있고, 더 넓게는 시장이 존재해요. 이 두 개를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실제로는.

 

아니, 그럼 지금 신기자님이 이야기하는 건 자기 모순이잖아요. 제왕적 대통령으로 너무나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시장도 컨트롤 할 수 없고, 정치도 컨트롤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없죠. 당연히 없죠.

 

그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왜 제왕적 대통령인가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대통령이지.

 

하지만 대통령한테 권력은 주는 거죠.

 

그러면 지금 말하는 것은 그 권력을 분산해서 무얼 노리는 거죠? 어차피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컨트롤할 수 없던 정치와 시장인데. 이제는 그 권력을 갈기갈기 쪼개서 난립하는 소수정당, 분권화된 권력을 가지고 무얼 하고 싶은 겁니까?

 

진짜 정치가 시작되겠죠.

 

진짜 정치가 시작될까요? 진짜 혼란이 시작되겠죠.

 

(단호하게) 아니, 진짜 정치예요. 정치는 곧 혼란이고, 그 혼란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정치고요. 한국정치의 문제는 대통령 하나만 뽑으면 이미 질서가 세워져 있다고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의회에서의 혼란은 나쁘다고 여겨요. 대통령이 명령을 내려서 정치적 질서를 세워주면 그만이라고 여기죠. 그러니까 정치가 발전을 못한다고요. 정치는 필연적으로 혼란을 돌파해야 돼요. 하지만 그 혼란다음에 질서가 오는데, 한국은 그 혼란이 무서워서, 이사님이 좋아하시는 표현을 제가 좀 인용하자면, 가지 않은 길을 가지 않는다고요. (웃음)

 

13. 유권자는 개헌을 원하는가?

 

아, 그런데 저는 가지 않은 길을 가지 않는 것과 정부, 특히 집권시스템하고는 거의 무관하다고 느껴요. 왜냐면 제도를 바꿔서 성공한 나라를 그다지 본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지금 미국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면 해결될까요? 과연 지금 이태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대통령제로 바꾸면 해결될까요? 과연 지금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꾸면 해결될까요? 프랑스사람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프랑스의 대통령제가 완벽한지. 미국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미국의 대통령제가 완벽한지.

 

그 부분은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87년 체제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고치지 않죠?

 

저는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과 문제를 해결해서 얻는 실익이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는 실익이 가시적으로 커야 한다고 보는데 과연 그럴까요? 게다가 국민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모아졌으면 모르겠는데, 지금 욕심 많은 현직 국회의원들 말고 우리 국민들이 의원내각제를 원하나요?

 

사실은 우리 국민들에게 그걸 원하는지 아닌지조차 물어본 적이 없죠.

 

그래서 최근에 많이 물어보고 있죠.

 

이걸 그냥 신문들, 몇몇 언론에서 리서치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개헌이 정말 중요한 아젠다로 떠오르게 할 필요가 있어요. 국민 토론이나 티브이 토론을 해보고, 여야가 나와서 아젠다를 띄우는 일을 충분히 한 다음에 국민들의 뜻을 물어야지요. 그런 과정도 없이 국민들은 개헌에 관심 없어, 이원집정부제는 싫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이원집정부제가 뭔지 사람들을 잘 몰라요. 내각제가 싫은 이유도 다른 게 아니예요. 2공화국 때 내각제가 실패했다는 50년 전 기억만 가지고 있는 거죠. 사실은.

 

그런데 저는 실패할 것 같아요.

 

아, 그러니까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을 봤을 때,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봐요.

 

권력구조가 바뀌면요. 정치인의 수준이 높아져요.

 

글쎄요. 저는 그럴 것 같지 않는데요. 지금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의원들의 수준이 높아요? 그냥 지금 권력을 어떻게 하면 유지하고 더 해먹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는 중인 것 같은데.

 

봐요. 예를 들면 석패율제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면, 민주당 후보가 지역구에 나가요. 대구에 나갔다고 생각해보자고요. 그런데 졌어. 당연히 지겠죠. 하지만 석패율제도를 통해서 비례대표 1번을 주는 거예요. 대구에 나갔으면. 그러면 이 사람은 지역구에 나갔지만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들어올 수 있어요. 그러면 당선되기 어려운 지역구로 가겠죠. 왜냐하면 석패율제도가 있으니까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잖아요. 서로가 더 어려운 지역구로 갈 거예요. 어려운 지역구로 갈수록 명분도 얻으면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옛날에 노무현대통령이 석패율제도가 있었으면, 부산에서 떨어지고 나서 금세 국회의원이 됐을 거예요. 네 번 이상 떨어지지 않고요. 제도를 바꾸면 좋은 사람들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고요.

 

(한숨)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이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국민들은 더 냉소적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생각엔 석패율 제도가 도입되면 당에서 힘깨나  쓰는 의원들은 질 게 뻔한 선거구에 나가서 비례대표로 당선되려고 하겠네요.

 

(이를 갈며) 그것이 하기 나름이라니까요. 사실은. 정치가 뭔데요. 국민들한테 이게 중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거잖아요. 통일이 대박이라고 믿게 만들고. 아니면, 통일이 대박이라는 건 문제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건 다 정치의 파워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개헌이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믿게,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근데, 지금 신기자도 날 설득하는데 실패했잖아요.

 

(이를 바득바득) 사실 이사님은 설득당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김무성과 문희상이 주도하는 개헌. 거기에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거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요.

 

아니, 우린 이 잡담이, 해답을 제시할 순 없을지 몰라도, 서로 의견이 다른 두 남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주자고, 그렇게 시작한 거잖아요. 새로 출발했는데, 첫 잡담부터 이러깁니까?

 

만약에 김무성과 문희상에게 실날 같아도 잠재적 선의나 정치적 잠재력이 있었으면 기대를 했겠죠.

 

제가 다음번 잡담에선 이사님한테 복수를 할게요. 냉소와 무관심으로 일관할 테니까 두고 봐요.

 

(난처해 하며) 냉소와 무관심이 아니라 '현실직시'라니까요.

 

JO &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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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