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삼성전자의 미생


지난 11월 24일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어판을 통해 삼성전자와 관련된 특종 기사를 하나 내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익명의 삼성 소식통을 이용해서 이렇게 썼다. “현재 논의 중인 조직 개편안에 따라 부침을 겪어 온 스마트폰 사업 부문을 진두지휘해온 신종균 IM 사장이 모바일 부문 수장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 결과, 신사장이 공동 대표이사직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또한 소식통에 따르면 나머지 2명의 대표이사 가운데 소비자 가전 부문을 총괄하는 윤부근 사장이 모바일 사업 부문도 총괄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난리가 났다. 삼성전자의 연례 정기 인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삼성전자의 연례 정기 인사는 정부의 내각 개편만큼이나 주목 받는 이벤트다. 글로벌 1위 삼성전자의 인사 개편 방향은 다른 경쟁 기업들의 인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시장의 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는 이번 개각에서 이른바 총리급이 바뀐단 얘기였다. 연봉 120억 원을 받는 신종균 사장은 샐러리맨들 사이에선 총리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존재다. 


신종균 사장이 총괄해온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 부문의 실적이 악화일로인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삼성전자의 2014년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60%나 감소했다. 전기 대비로도 43%나 쪼그라들었다. 원인은 모바일 사업 부문의 추락이었다. 한때 10조원을 넘어섰던 실적이 2014년 3분기엔 2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삼성은 신상필벌로 유명하다. 당연히 연말 인사에서 모바일 사업 부문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영업이익 10조 신화와 주역 신종균 사장조차 예외가 아니라고 보도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재계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파동이 일었다. 


지난 12월 4일 삼성전자는 정기 인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종균 사장은 유임됐다. 신종균, 윤부근, 권오현의 3인 공동 대표 체제도 유지됐다. 결과적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이 오보를 낸 꼴이 됐다. 결과는 틀렸지만 전부 다 틀린 건 아니다. 이번 인사로 고뇌하는 삼성전자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론은 유임이었지만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미생집이 됐다. 여느 기업 조직 인사에서처럼 살았으나 밀려버린 직장 조직의 미생들이 대거 양산됐다. 개발과 마케팅과 미디어솔루션 부문의 고위 임원들이 대거 해임됐다. 모바일 사업부의 수장 신종균 사장은 자리를 지켰지만 신종균 사장과 함께 10조 신화를 창출했던 주역들은 대거 밀려났다. 임원 인사에 이어질 부장급 인사에서도 미생들이 속출할 공산이 크다. 


신종균 사장은 갤럭시 신화의 상징적 존재다. 2009년 무선사업부 부사장을 맡으면서 5년 동안 삼성전자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복귀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문제는 이건희 후방사령부와 신종균 야전사령부가 합작했던 삼성전자의 전성기가 끝나버렸다는 진실이다. 2013년이 정점이었다. 2014년으로 접어들면서 삼성전자의 실적과 점유율과 시장 장악력은 현저하게 약화되고 말았다. 기대작 갤럭시S5가 부진하면서 기술 선도력도 잃었다. 2014년 연말 인사가 특히 주목받았던 이유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야전사령관은 유임시키되 야전사령부는 개편하는 타협책을 선택했다. 원인은 아직 후방사령부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는 2015년이면 더욱 본격화될 이재용 부회장 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삼성에 대한 장악력을 빠르게 높여가고 있다. 2014년 내내 삼성그룹은 사업 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했다. 이재용 체제의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었다.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재용 체제의 삼성은 전자와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지주 회사 체제가 될 터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한화그룹에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과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매각하면서 비주력 사업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글로벌 1등 사업에만 집중하겠단 뜻이었다. 


문제는 이재용 체제의 소프트웨어였다. 이번 인사에선 권오현 부회장이 이끄는 부품 사업부의 승진폭이 컸다. 올해 부품 사업부의 메모리 반도체 부분이 삼성전자의 실적을 방어해준 측면이 작용했다. 반도체 부분은 오늘의 삼성전자가 있게 해준 어제의 캐쉬카우다. 모바일 사업부가 오늘의 캐쉬카우로 급성장하면서 가려진 측면마저 있었다. 지금은 오늘의 캐쉬카우가 맥을 못추자 다시 어제의 캐쉬카우가 부각되는 모양새다. 정작 지금은 내일의 캐쉬카우가 필요한 순간이다. 해법은 이재용 체제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다. 아직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중인 이재용 체제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작업을 본격화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3인 공동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단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윤부근 가전부문 사장이 신종균 사장을 대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밖으로는 신정균 사장과 윤부근 사장의 사내 권력 투쟁처럼 비춰졌다. 사실이라면 이런 권력 암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일의 캐쉬카우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필연적인 노선 갈등이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여느 기업에서라면 자칫 난파선에서 구명 보트를 놓고 싸우는 소모적 암투가 될 수 있다. 삼성에선 하기에 따라선 오히려 생산적 갈등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은 갈등을 조종할 수 있는 제왕적 오너가 존재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사내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고 봉합할 줄 아는 오너였다. 


게다가 갈등의 방향은 일단 맞았다. 삼성전자가 영위하고 있는 하드웨어 전자 산업의 다음 진화 단계는 사물 인터넷이다. 모바일 기기에만 국한됐던 네트워크가 모든 가전 기기로 확대된다. 당연히 모바일 사업부와 가전사업부가 통합될 수밖에 없다. 이때 주도권을 모바일이 잡느냐 가전이 잡느냐가 이재용 체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의 핵심이다. 이번 인사에선 결론이 안 났다. 지금은 삼성전자야말로 바둑판 위에 서 있으나 아직 활로를 못 찾은 미생이다.

 

지금 삼성전자는 기로에 서 있다. 삼성전자 안에선 지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충돌하고 있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저력이 있는 회사다. <인터스테라>의 주인공 쿠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삼성도 그래왔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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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