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어떻게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대한민국을 인양할 것인가

1.


신기주(이하 주) 이걸 화두로 얘기를 시작해보죠. 지난 5월 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서 JTBC <뉴스9>에서 장병수 언딘 기술 인사와의 인터뷰를 내보냈잖아요. 이사님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지만, 장병수 언딘 기술 이사의 논리는 굉장히 합리적이예요.


김동조(이하 조) (고개를 끄덕이며) 합리적이죠.


이렇게 주장하죠. “우리는 구인이 아니라 구난 계약을 맺었다. 구인 업무는 해경과 해군의 몫이다. 우리는 해경 측으로부터 구인 혹은 구조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 이렇게 덧붙이죠. “4월 16일 자정 무렵까지 세월호 안에 300명이 넘는 승객과 학생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손석희 사장은 끊임없이 이렇게 되묻죠. “아이들이 세월호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하지 않았나. 16일 자정까지 몰랐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비공식적으론 알았지만 공식적으론 몰랐단 건데요.


법적인 말장난이죠.


손석희 사장과 언딘 기술 이사의 인터뷰는 결국 두 가지 대립되는 가치 논리의 싸움입니다. 손석희 사장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알았다면 인간적으로 당장이라도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구하려고 애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리고, 언딘 기술 이사는 공식적으론 몰랐던 게 맞으며 합리적으론 물 속에 당장 뛰어 들어가봐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적인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논리죠. 인간적 논리와 시장적 논리의 충돌이랄까요.


언딘은 인양업체니까 인양을 하는 게 맞죠. 물론 인간적으론 언딘한테 장비가 있으니까 구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아요. 그런데 그건 메뉴얼대로 하지 않는 거죠.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잖아요. 사람들은 답답해하죠. 우리는 왜 선진국 수준의 구조가 안 되냐고요.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가령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일어났다고 쳐요. 과연 미국에서도 인양 전문 업체한테 “너희는 왜 구조를 하지 않았냐”고 질책할까요? 전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구조를 해야 하는 사람한테 왜 구조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 게 맞죠.


대중 정서에는 반대되는 논리죠.


전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경제적 논리로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자칫 비인간적인 인간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 자리에선 말해보자면, 경제학에서 제어할 수 있는 건 가격과 경쟁 뿐이에요. 가격을 제어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죠. 비행기 좌석 가격에서 경제적 논리가 가장 잘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비행기의 안전은 비행기 좌석 가격과는 전혀 다른 문제죠. 경제적 논리가 작용되질 않아요. 자동차를 예로 들자면, 안전한 자동차인 볼보는 안 팔리잖아요. 안전한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일단 자동차는 빨리 가고 예뻐 보여야 팔리는 거죠. 물론 사고가 나서 본인 혹은 본인 가족이 죽으면 그때서야 후회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안전을 판다는 건 굉장히 무모한 일이거든요.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안전을 시스템화해서 거기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자고 주장하지만 그게 굉장히 어렵단 거죠. 안전을 시장 논리에 맡기자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과 같은 얘기거든요.


언딘과 손석희 사장의 인터뷰에서 드러나고 있는 모순이 바로 그겁니다. 자기들은 인양할 만큼의 돈을 받고 인양하러 간 사람들인데 그 가격으로 사람까지 구할 순 없다. 합리적이죠. 언딘도 결국 구조는 가격에서 자유로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사님 말씀처럼 언딘은 계약 때문만이 아니라 원래부터가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가격 조건 아래에 있었단 겁니다. 그런데 정부도 구조를 할 능력이 없었단 거죠. 왜냐? 정부도 합리적 시장 논리에 따르고 있었거든요. 가격을 고려할 때 구조 인력과 장비를 외주를 주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에 정부도 시장 논리에 따라 그렇게 결정한 거죠. 가격에 따르는 시장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정부조차 시장에 포섭돼있었던 거죠.


그래서 언딘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되는 거죠. 그건 정부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못하니까 이제 와서 우리한테 덮어씌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논점이 더 등장합니다. 손석희 사장은 계속 “이해가 안 간다”고 그러죠. 나중엔 안경까지 벗어요. 사실 손석희 사장이 말하고 싶었던 건 “네가 인간이야”일 겁니다. “인간이라면 사람을 구하러 물 속에 들어가려고 애라도 써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죠. 그런데 손석희 사장은 끝내 이 말을 못해요. 왜냐? 프로페셔널 방송인이 카메라 앞에서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건, 굉장히 촌스러운 일이거든요. 그런 인간적인 논리 자체가 반시장적이고 비합리적이란 거죠. 시장이 움직이는 프로의 세계에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게 촌스러워요. 그건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죠. 냉정하고 차가운 시장 논리에 충실할수록 전문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칭찬 받죠. 비인간적이 될 수록 칭송 받는 사회가 한국 사회란 겁니다.

 

2.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결국 한국 사회에 거대한 두 개의 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이걸 제도적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 제가 트위터에 이런 걸 쓴 적이 있어요. ‘우리는 진짜 사랑이 왔을 때 이게 혹시 가짜 사랑이 아닐까 의심하는 바람에 진짜 사랑을 놓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또 진짜 사랑을 꼭 잡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허황된 사랑과 감정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위험도 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뉘잖아요. 너무 진지해서 연애를 하지 못 하는 인간과 너무 문란해서 연애를 하지 못 하는 인간. 중간인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손을 번쩍 들며) 아시다시피, 전 문란한 쪽에 속하는 걸로.


(웃음) 근데 이게 꼭 사랑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이런 종류의 안전이나 위기에도 해당된다는 거죠. 2007년에 금융위기가 났었잖아요. 그 때 연준이 부동산 가격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고평가된 건지, 저평가된 건지 자신들이 시장보다 더 잘 알 수는 없다는 거였어요.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오른 것 같아서 연준이 개입을 했어요. 근데 잘못 알았어요. 그럼 그 비용은 사회적으로 지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린스펀이 ‘버블이 버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터지기 전까진 모른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대신 그린스펀은 시장에 신호를 줬어요. ‘내가 버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버블이 터진다면 막아줄게’ 근데 이게 더 나쁜 거죠. 그럼 버블 상황에 있는 기업이나 은행은 연준이 막아준다니까 일단 달리게 되겠죠. 결론은 버블이 터지며 아수라장이 됐죠.


그린스펀은 시장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자신이 버블을 만들어가고 있단 걸 알았지만 특정 목적에 의해서 방치한 거잖아요. 그게 그린스펀의 개인 목적이든 당시 클린턴과 부시 정권의 정치적 목적이든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그리스펀은 유명한 애매모호 화법을 썼던 거겠죠. 버블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블인지 아닌지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고도 알까 말까 하다는 식의 입장을 취했으니까요.


(웃음) 그런 입장이 편하거든요. 그걸 벗어나는 순간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잖아요.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위기가 올 수도 있으니 미리 금리를 올리겠다, 라고 했을 때는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잖아요. 그 비용을 지불하기는 싫죠. 그래서 버블이 터진다는 진짜 위기가 오기 전까지는 버블이 터지고 난 다음에야 개입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거죠. 이게 아까 얘기했던 거예요. 너무 문란한 애들과 너무 고루한 애들이 실은 별 차이가 없다는 거죠. 세월호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한국이 세월호 사건까지 온 이유는 해양사고가 30년에 한번씩밖에 안 나서죠. 굳이 여기에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또 선장만 대응을 잘했더라면 모든 탑승객들이 생존했을지도 모를 사고이고요. 이렇게 발생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낮은 수준의 사고를 위해서 그 많은 구명조끼와 구명정들을 다 구비하고 안전훈련들을 전부 다 해야 하느냐 과연 그 비용을 감당할 사회적 준비가 되어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거죠.


이렇게 봐보죠. 손석희 사장과 언딘 이사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저도 사람이라, 손석희 사장 편을 들게 됩니다. 하지만 언딘의 논리가 맞는다는 걸 알아요. 머리는 언딘 편인데 가슴은 손석희 편인 거죠. 이건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언딘의 시장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사고와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린 언딘식 논리를 내면화 해왔어요. 이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30년에 한번씩 터지는 해양사고를 위해서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건 명백하죠.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앞으로도 유지되면 30년마다 한 번씩은 이런 일을 겪어야 된단 뜻이잖아요. 30년에 한번씩 터지는 참사라도 막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논리 체계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걸로 사람들을 설득해내야 해요. 안 그러면 적어도 30년 안에 또 아이들이 죽게 됩니다.


(침통한 표정) 또.


이건 부끄러운 고백인데요, 사고 초기인 4월16일과 17일에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이란 뉴스가 나왔잖아요. 전 주변 사람들한테 아무도 안 들어가고 있을 거라고 얘기했어요. 나 같아도 안 들어간다고요. 지상에서 일어난 사고도 아니에요. 골든 타임 얘기를 하잖아요. 불과 몇 시간 만에 상당수의 인원이 익사했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그런데 왜 맹골수도 같은 급류 속으로 들어가겠어요. 당연히 안 들어가죠. 합리적 선택이 내면화돼 있는 거죠. 하지만 어떤 사람은 들어가기도 한다는 겁니다.


누가요?!


9.11 테러 때를 생각해보죠. 소방수 300여명이 두 번째 무역센터빌딩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올라가잖아요. 그 사람들은 바보죠. 시장 논리와는 완벽하게 반대되는 선택을 한 거니까요. 그들은 왜 그렇게 불합리한 선택을 할까요? 왜요?

 

3.

 


그 소방수 얘기가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요. 9.11때 3천명이 죽었는데 그 중에 500명이 경찰관과 소방관이잖아요. 그게 미국의 문화인 거죠. 미국의 경찰관과 소방관들은 그런 상황에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웬만하면 들어가는 문화라는 거죠. HBO에서 나온 <Taking Chance>라는 1시간 20분짜리 영화가 있어요.


찬스?!


(비웃음) 챈스라는 이름의 일병이 이라크 전쟁 때 죽었는데 이 사람의 유해가 가족들한테 갈 때 해병대 중령인 케빈 베이컨이 에스코트를 해요. 그 과정에서 미국이 전사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가 돼있어요. 전사자의 흙 묻은 인식표, 망가진 손톱 하나 하나를 에어 펌프로 다 닦아내고 소독해서 깔끔한 시신으로 만든 후에 에스코트를 하러 가요. 그 중령이 아메리칸 에어에 가서 전사자를 에스코트하러 간다고 하니 표를 발급해주는 승무원이 퍼스트클래스로 업그레이드를 해줘요. 기내에선 기장이 방송을 해요. 전사자가 우리 비행기에 실려있고 그 전사자를 에스코트하는 분이 계시다고요. 비행기에 시신을 올리고 내릴 때도 도열해서 경례를 해요. 심지어 비행기를 갈아타야 해서 밤을 보내는데 이 장교가 시신을 떠날 수 없다면서 시신 옆에서 잠을 자요. 이런 게 엄청난 인센티브에요.


(고개를 갸웃하며) 과연 인센티브면 충분할까요?


(단호하게) 됩니다. 왜냐면 내가 죽었을 때 나라가 내 명예와 죽음을 철저하게 존중해주고 남겨진 가족들을 그만큼 보살펴준다는 확신이 생기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죽지 않겠죠.


근데 저는 그게 인센티브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한국적 사고방식일 수는 있지만 전사자의 자식들은요? 나라에서 아무리 우리 아빠를 애국선열이라고 해줘도 내가 아빠가 없어요. 나라에서 돈도 쥐어준다 한들 평생 놀고 먹을 돈을 쥐어주는 것도 아니고요. 또 엄마는 허벅지만한 팔뚝을 가진 소방관과 살았었으니 또 그런 남자 만나서 살아야 될 거고. 그럼 새아빠 만나야 될 거고. 그 과정에서 수 없이 많은 평지풍파가 있겠죠. 게다가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건 피할 수 없잖아요. 가족뿐만 아니라 전사자도 마찬가지죠. 나도 삶을 즐기고 싶은데 무너질 게 뻔한 건물 위로 올라간다.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사실 그 순간엔요. ‘내가 죽으면 나라는 내 죽음을 존중해주고 우리 가족을 부양해주겠구나’라는 인센티브가 작용하는 순간이 아닐 수도 있었죠.


(잠자코 듣고 있다)


물론 이사님이나 저나 분명 시장주의자입니다. 시장에 많은 걸 맡기는 게 가장 잡음이 적고 모순이 적다고 믿죠. 시장 논리에 따르면 인센티브가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게 만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의문이 들었어요. 이준석 선장한테 높은 연봉과 정규직 일자리를 줬다면 사람들을 구하려고 들었을까요? 재화적 인센티브만으로 모순이 해결될까요? 인센티브 이외에 뭔가 더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자꾸 이런 의문이 들어요.


 

4.

 

그게 직업 윤리일 겁니다. 사람을 구하는 게 내 직업이고 내 역할이라면 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목숨도 건다는 직업 윤리요.


결국 무형의 가치잖아요. 저도 오랫동안 시장이 많은 걸 해결해주는 게 맞는다고 봤어요. 하지만 어떤 것들은 시장이 해주지 못 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은 무형의 가치에서 해법을 찾아야겠죠.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는 건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그런 무형의 가치들이 말살된지 오래됐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물 속에 사람이 빠져 있어도 구하러 들어가지 않는 건 그런 무형의 가치를 잃은 채 합리성에만 매몰돼 있기 때문은 아니냐는 거죠. 정부도 시장 논리에 포섭된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란 거죠.


아까 제가 세월호가 주는 거대한 주제가 두 개 있다고 했잖아요. 하나는 경제학적으로 안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생명에 관한 것이라면 블랙스완이 나타날 정도의 정말 작은 가능성의 위험에 대해서도 대비를 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였죠. 또 하나는 방금 얘기했던 무형의 자산 문제에요. 아마 지금 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납득하기 힘든 건 세월호 사건이 본인들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점일 거예요. ‘어떻게 저게 내 잘못이야?’라고 말하고 싶을 거예요. ‘다른 정권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어? 왜 내 지지율이 떨어져야 되는데? 도대체 저게 왜 내 책임인건데?’ 라고 말하고 싶을 거라고요. 하지만 책임이 있거든요.


오늘 잡담의 주제네요. 결국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고 확산시키고 지켜내는 건 정치의 역할이라는 거죠. 시장의 역할은 가격과 비용에 의해 합리적 균형을 만드는 거예요. 정치의 역할은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서 그걸 사람들이 믿게끔 만드는 거죠. 근데 한국 정치는 시장에만 의존하려고 해요. 정치 자체에서는 아무런 에너지도 끌어오지 못하죠. 시장의 힘을 이용하는 건 굉장히 효율적인 정치죠. 하지만 때로는 정치가 시장을 움직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문제는 정치죠.


미국에서 2005년에 카트리나 참사 일어났을 당시 부시 정권은 지금 박근혜 정권만큼이나 무능했어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잖아요. 태풍은 시시각각 몰려오는데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민들을 방치했죠. 10만명 이상이 뉴올리언즈 시내에 그대로 고립됐어요. 그런데 언론은 그 사람들이 폭도로 변했다는 루머를 확산시켜요. 결국 정부가 구조돼야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총으로 위협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잖아요. 결국 그런 무능함 때문에 부시 정권은 붕괴됩니다. 헌법상 임기는 채웠지만 부시2기는 사실상 내파됐죠. 그렇게 정권이 붕괴됐을 때 미국에서는 오바마 같은 정치인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대안을 만들어낸 겁니다. 기존 정치와 시장이 붕괴됐어요. 폐허 위에서 다시 깃발을 세우고 잃어버린 무형의 가치를 일으키고 그 가치를 따라보자는 정치적 리더십이 재건되는 거죠.


(씁쓸한 표정) 한국은?


지금 한국도 카트리나 참사 이후의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새로운 가치나 정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여야를 막론하고 대안이 없죠.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질 못하니까요. “이건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는 이런 우발적인 상황까지 감당할 수 없다. 그건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요구다” 이런 합리적인 논리 안에 갇혀 있죠. 지금은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고 있지만 곧 효율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고개를 들 겁니다. 지방 선거 결과와는 상관 없어요. 여야 모두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그게 중요한 이슈 두 가지를 만들죠. 청해진 해운 회장도 자기가 생각했던 처벌 내지는 법에서 규정된 것보다 훨씬 큰 형태의 기소를 당하거나 선고까지 당했을 때 반응은 첫째는 재수가 없었구나. 둘째는 너희는 깨끗해? 라는 거겠죠. 그게 일종의 정치적 냉소에요. ‘난 재수가 없어서 처벌받지만 다른 배는 안전해?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기름값만 6천만 원이 넘게 드는데 그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표 값을 올리면 손님이 안 오잖아’ 라는 문제 제기를 할거고요. ‘그걸 다 수용해서 내가 잘못했다 쳐. 근데 너희도 잘못했잖아. 국정원 댓글 조작 했는데도 너희는 처벌 안 받잖아. 그런 너희가 무슨 권리로 내게 가격 논리를 넘어서서 인간적 윤리로서의 안전을 지키라고 강요한단 말이야’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그게 세월호 선장한테도 적용할 수 있는 논리잖아요. 내가 비정규직 선장인데 뭐 하러 목숨을 걸어서 사람들을 구하냐. 사실 그 논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자본주의 시장 안엔 어디에 있어요. 우리 모두 다 그런 사람과 다르다고 주장할 뿐이죠. 실제로 그 상황이 닥치면 그 사람과 똑같은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죠.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죠. 옆집에서 부동산 가격을 1억 올리면 나도 1억을 올려요. 왜 올리냐? 안 올리면 바보니까요. 그게 거품을 만들고 결국 공멸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기적으로 행동하죠.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내게 가장 최대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행동을 하라고 교육을 받았고 그 사고가 체화되어 있잖아요. 그런 사고를 갖고 있는데 비정규직인 내가 왜 사람들을 목숨 걸고 구하겠어요. 그럼 비정규직을 안 시키면 되지 않냐. 선장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고 인센티브를 충분히 주면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지 않겠냐. 그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어주면 공장 생산성이 몇 배로 좋아진다는 논리와 다를 게 없어요.


이게 정말 거대한 이슈죠. 그럼 안전을 위해서 선장급 이상은 무조건 다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연봉 1억을 주면 해결이 될까요? 문제는 그 가격을 누가 감당하냐고요. 사람들이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안전이나 생명에 대해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그게 안 된다는 거죠. 실제로 이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며칠 뒤에 터졌어요. 경기도의 안전 당국이 경기도 광역 버스 회사에게 뭘 한다고 공문을 보냈대요. 근데 그 광역 버스 회사가 정원과 관련된 안전 조사가 나오는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은 거죠. 원래 분당이나 판교에서 고속도로를 지나 서울로 오는 광역버스는 정원 외 10% 정도까지 입석을 태울 수 있게 돼있어요. 물론 실제로는 10%가 훨씬 넘는 사람들이 입석을 타고 갔죠. 사실 굉장히 위험한 일이잖아요. 고속도로를  입석으로 졸면서 간다. 그러다 차가 부딪치거나 전복이 되면 서 있는 사람은 다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이 회사가 입석을 금지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매뉴얼대로 한다면 탑승을 시키지 말아야 하거든요. 사람들은 출근은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배차를 늘리자니 돈이 안되잖아요. 버스 회사 입장에서는 가격을 올리면 되죠. 근데 가격을 올리면 사람들이 그럴 바엔 택시 타겠다고 할 거고요. 이게 쉬운 명제가 아니라는 거죠.


 

5. 


결국 세월호 참사는 시장의 실패라는 겁니다. 동시에 시장에 포섭된 정부의 실패죠. 이걸 해결을 하려면 시장 바깥에서 또 정부 바깥에서 힘을 찾아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시장 안에서만 해법을 찾아왔어요. 혹은 정부가 해법을 던져주기만을 기다려왔죠. 시장 밖에 있는 해법은 오류가 나기 쉬운 잘못된 해법이라거나 비시장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논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판 받아 마땅하다거나 하는 사고방식에 갇혀있었던 건 아니냐는 거죠. 정치권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얘기를 해보면 새누리당같은 정당은 당연히 비용적 사고 방식을 해요. 하지만 대안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같은 정당마저도 새누리당의 사고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심지어 그보다 못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죠. 시장을 이용하다 마니까 그럴 수 밖에요. 다른 가치를 내세우는 정당 혹은 리더가 등장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등장하기엔 비좁은 거죠.


말씀하신 대로 가격규제, 경쟁규제, 안전규제를 시장에 다 맡겨뒀을 때 자산은 효율적으로 분배가 안돼요. 그럼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한단 말이죠. 노무현 정권을 예로 들면요. 정치외교적이나 경제적으로 한국이란 나라는 한미FTA를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물론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도덕 감정으로는 이라크의 전투병을 파견하는 것이나 한미FTA는 하지 않는 것이 옳았죠. 그렇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은 국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고 대변하는 대변자로서 한미FTA는 하는 게 맞는다라는 도덕적 결단을 내렸지만 지지기반이 무너졌죠. 그렇다고 보수 진영에서 특별히 고마워했던 것도 아니에요.


(웃음) 어차피 지지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한미FTA로 인해서 우리가 얻는 이익의 총량은 많지만 그 이익이 특정 그룹에 쏠린다. 만약 한미FTA로 피해를 보는 계층이 있다면 이익을 본 집단 이익의 일부를 그 계층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라고 설득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분은 스스로 고뇌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까지 설득할 겨를이 없었어요.


게다가 정권 말기라 설득할 틈도 없었죠.


게다가 내부적으로도 균열됐던 거죠. 경제학자로서 참모그룹에 있던 사람들은 나가버리거나 노골적으로 반대했죠. 정권 내부에 균열이 생기니까 보수에서는 ‘당연히 해야 할 걸 한 거지’ 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지지했던 영역에서는 별 도움을 못 받았죠.


(괴로워하며) 노무현 정부부터 한국 기업들은 전성기에 접어들게 되죠. 권력이 시장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거죠. 이전 정권에서는 기업들한테 힘을 실어주는 대신 권력을 휘둘렀죠.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도 하고 대기업도 육성하는 구조로 가는 대신 시민사회 즉, 거버넌스 구조를 대안으로 제시했어요. 정부도 이미 시장한테 점령돼가고 있고 그건 시대적 논리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시민사회가 성장해서 시장화 돼있는 정부, 시장의 중심이 되고 있는 기업이나 자본가들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묵묵부답)


하지만 그 후 이명박 정부 5년, 박근혜 정부 1년 반 사이에 그 시민 사회 구조가 완전히 붕괴됩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시장 이외의 힘은 정부가 아니죠. 시민사회 혹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깃들어 있는 겁니다. 그걸 도덕관념이라고 부르든 인간성이라고 부르든 뭐든 상관 없어요. “애들이 죽어가는데 가격이고 뭐고 무조건 구해야지”라는 불합리한 사고에서 시작하는 인간적 믿음들이 사람들 사이에 뿌리내려 있어야 하고 그걸 키웠어야 했죠. 하지만 어느 단계에선가 그런 노력은 멈췄고 인간 사회는 붕괴된 거예요. ‘사람이 죽어가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라거나 ‘사람이 죽어가니까 정부가 어떻게 해줘야지라’는 단 두 가지 논리에서 사고가 멈춰버린 거죠. 대안 세력은 커녕 대안적 생각조차 성장하지 못했던 거죠. 그게 세월호 참사로 터져 나온 거고.

 

6.

 

저는 대안세력을 어떻게 만들것이냐는 것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해요. 성추행을 하는 고등학교의 일부 선생님들이 교회 재단에 헌금을 많이 낸 기독교 신자였다는 사실이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봐요. 왜냐면 대략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는 인구의 1400만명이 기독교 신자인데 그 중 900만명이 개신교 신자고 또 다른 500만명이 천주교 신자고 1000만명이 불교신자에요. 한국은 이렇게 종교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많은데 도덕적으로 엄밀한 나라라고 하기 어렵죠. 미국처럼 국민의 상당수가 교회는 안 다녀도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나라들에서도 정치적 뿌리를 정당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쉽게 얘기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에서는 서로 다른 당원들끼리 전당대회를 축제처럼 생각하죠. 마치 예배처럼 컨벤션에 가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환호하고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고요. 그게 어떤 의식처럼 돼있어요.


(손을 번쩍 지켜들며) 할렐루야.


우리나라는 민주당 당원이면 회사 입사 안 되는 거 아니냐 생각하죠. 실제로 민노당 당원인데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미처 당적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수원에 가서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죠. 이렇게 당원으로서 정당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대통령후보를 당원 투표로 뽑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어요. 모바일 투표로 70-80% 가중치를 주고 당원한테 20-30% 가중치를 주는 나라가. 당의 주인은 당원인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뜬금없이 모바일 투표로 대통령 후보를 뽑아요. 근데 그 이상한 점에 대해서 당 내에 있는 사람들조차 의문을 제시하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의 결론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시겠지만 전 내각제주의자입니다. 내각제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우위에 있는 정치제도라는 건 인정하죠. 다만 비현실적이라고 말하죠. 사실입니다. 정당이 문제니까요. 가치가 아니라 이해로 결집된 한국의 정당 구 안에서 내각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내각제로 가지 않으면 가치 정당은 태어나지 않아요. 언제까지나 집권 가능한 대통령 한 사람을 둘러싼 붕당만 생겨날 뿐이죠. 물론 소선거구제부터 뜯어고쳐야 하겠죠. 어쨌든 저는 내각제로 가기 위해서 정당이 진화할 필요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 가치 정당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급진적인 생각이라는 듯) 그런가요.


당장 유권자들한테 불합리한 투표를 하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녹색당이 됐든 그 밖의 소수 정당이 됐든 집권이라는 합리적 목표가 아닌 가치에 의해 투표를 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과 대선 후보가 있는 정당에만 투표해선 결국 또다시 시장에 매몰된 정권을 또 만들 뿐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의 대안 대접을 못 받는 것도 이것 때문일 겁니다. 투표 용지에 인쇄된 차선이지 진짜 대안이 아니거든요.


(그건 동의한다는 듯) 그렇죠.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나 국가 또는 청와대가 뭘 안 해준다고 대통령한테 사과하라고 하거나 퇴진하라고 요구해봐야 쳇바퀴 도는 일이잖아요. 예전에 삼품 백화점이 붕괴됐을 때도 YS보고 물러나라고 난리였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고 안철수 대표가 집권하면 물에 빠진 아이들을 살리러 뛰어들어가는 사회가 만들어지나요? 지금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차선에 투표하고 말 게 아니라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자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하긴 안철수 대표의 행보는 실망스럽죠.


(약간 흥분해서) 사실 안철수 대표가 말한 새정치의 본질은 대통령이 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새정치를 담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거냐 였죠. 그러나 안철수 대표가 뜻밖에도 그릇을 집어 던지는 실망스런 상황이 발생했지만요. 청와대를 노리는 패도 정치의 입장에선 합리적이죠. 집권 이후에 어떤 가치를 내세울지를 고민하는 왕도 정치의 측면에선 분명 타협적이죠. 이럴 순 있겠죠. 새정치민주연합이 미국의 민주당처럼 환골탈태하는 거죠. 미국 정치가 무시무시한 점은 클린턴 때 민주당과 오바마 때 민주당이 거의 다른 정당이라는 거예요. 정당 스스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진화해간다는 얘기죠. 미국 정치가 양당제 같지만 실제로 정당들이 포괄할 수 있는 가치의 폭이 굉장히 넓어서 가능한 겁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패권 정당이 아닌 새로운 가치 정당이 등장하거나 기존 정당이 진화해야 세월호 이후의 정치력 공백 상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요원한 문제 같잖아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어쩌면 지금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이런 잡담을 하고 있는 이유겠고. 지금의 에너지는 낭비돼선 안 될 겁니다. 애들 목숨값이니까요. 변화가 필요하다고 모두가 느끼는 시기가 그렇게 길게 가진 않잖아요.


저는 내각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실현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보니까 양당제로 얘기를 하자면, 진보 정당인 민주당이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은 정치라는 것이 정당간의 ‘경쟁’이잖아요. 얘가 바뀌어야 쟤도 바뀌는 거거든요. 얘가 허접하면 쟤도 같이 허접해 있는 거예요. 전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다지 호감을 갖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특히 지난 대선 때요. 정치적 경력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걸 절대 반대하기 때문이에요. 안철수란 사람이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대통령이 되는 건 좋아요. 하지만 다음 대선에 꼭 대통령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면 대통령도 못 되고 스타일만 구길거라고 생각해요. 짧아도 8년 정도를 놓고 봐야죠. 그렇게 해도 안철수가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에요. 오히려 다음 대선에 대통령이 돼서 물러나는 게 더 심심한 인생이에요. 8년을 쭉 정치를 헤보고 대통령이 되란 말이죠.


(웃음) 그게 박근혜 대통령이 걸어온 길인데요.


안철수는 원칙과 원리에 자기 나름의 스타일과 철학을 갖춰서 민주당 안에서 점점 영역을 확장해야 돼요. 지금은 자기 배경이 없잖아요. 다음 대선을 목표로 하니까 ‘네가 합치자고 해서 합쳤는데 일단은 내 영역을 넓혀야 돼. 지지율은 낮지만 당선 가능성이 높은 광주에 꽂아줘’ 라는 편법을 쓰게 되는 거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길 땐 이기자라는 마인드로 했으나 무소속 출마라는 역풍을 맞게 됐죠. 오히려 지금 보면 자기가 꽂아놓은 사람이 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죠.


 

7.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세월호 사건으로 내파돼서 붕괴됐다고 봅니다. 어떻게 재건할지를 얘기하려면 붕괴됐다는 걸 인정부터 해야죠. 그런데 다들 쉬쉬하고 있어요.


이상돈 교수라는 분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칼럼을 쓴 게 있어요. 이상돈 교수의 논리는 ‘이명박은 실패한 정권이다. 그러니 바뀌어야 된다’에요. 그럼 박근혜를 찍으면 안되잖아요. 야당을 찍어야죠. 근데 이상돈 교수는 박근혜는 여당 안의 야당이니까 박근혜를 찍었다는거예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근데 박근혜는 시대가 요구하는 걸 읽긴 했어요. 그래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안 하잖아요. 당선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자기 언어와 공약을 다 배신했잖아요. 이건 세월호 사건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불거져서 폭발할 게 분명한 것이였어요. 그걸 전술로 막으면서 갔죠. 근데 전술과 모략과 지략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사고가 터지니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분출해버린거죠.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에 실망하고 비난하는 이면에는 몰락해버린 박근혜 언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방선거가 끝나면 더 빠르게 레임덕이 올거라고 생각해요.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이 다 무너지면 수도권 의원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겠죠.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3년 반이 남았잖아요.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 단 15년이에요. 남은 3년 반은 우리에게 너무 길고 소중한 시간이죠. 그러니 정권을 수습해서 정신을 차리길 바래요. 제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박근혜 주변과 새누리당에는 그래도 쓸만한 사람들이 있어요. 문제는 안 쓴다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쓰냐 면요. 딱 하나 빼놓고 랜덤이에요. 그 하나가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이에요. 이명박 대통령은 능력과 무관하게 ‘측근’을 쓰는 스타일이었죠.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하고 나서는 철저하게 본인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을 써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자리에는 제법 훌륭한 사람이 얻어걸려요. 경제팀으로 얘기하자면 현오석 부총리는 재수 없이 무능한 사람이 걸린 거고 조원동 수석은 우연히 괜찮은 사람이 걸린 거죠. 이렇게 일관성 없게 사람들을 쓰는 거 보고 처음에는 무슨 원칙이지 의아했어요. 결론은 아, 그냥 랜덤이구나, 주사위 돌려서 된 거랑 똑같구나. 좋게 해석하면 이명박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 내지는 측근 정치를 만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경제 정책이나 이론에 밝고 시대를 잘 읽을 수 있는 이혜훈, 유승민, 김종인 같은 사람을 배제하고 본인과 아무 상관 없는 경제 인사들을 꽂는 거죠.


(한숨) 사실 현오석 부총리만해도 관가에서는 예스맨으로 평가 받는 인물이잖아요.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인물을 갖다 놓은 이유가 흔히 말하는 ‘만기친람’ 때문이라고 봐요.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에 권력을 분산할 생각이 없는 거죠. 권력의 본질을 모르는 거죠. 권력을 쓰는 법은 결국 권력을 나눠주는 겁니다. 권력의 본질은 권력의 분산에 있나는 거죠. 권력을 아무리 혼자 틀어쥐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못해요. 지금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것도 결국 권력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대통령 탓이 크죠. 21세기는 정부도 국가 권력을 시민 사회와 나눠야 하는 시대인데, 박근혜 정부는 그 권력을 내각은 커녕 청와대에만 집중시키려고 하니까요. 통치가 될 턱이 있나.


(한숨) 그러니까.


안대희 총리 후보가 나왔을 때 이런 얘기가 나오더군요. 안대희는 대통령 말을 안 듣는 사람이니까, 경제 부총리 이하는 모두 다 말 듣는 사람들만 뽑을 거라고요. 앞으로도 그 인사 스타일은 바뀌지 않겠죠. 왜냐면 대통령은 자신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 단적인 예가 팽목항에 갔을 때였죠. 모두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팽목항에 내려갔다가 진도체육관으로 들어가죠. 측근들은 말렸어요. 근데 그때까지도 대통령은 내가 등장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 때 상황은 대통령이 아니라 누가 나왔어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래서 대통령이 엄청나게 당황하죠. 심지어는 실종자 학부모가 단상에 올라간 박근혜 대통령한테 무릎 꿇고 비는 사진이 찍히잖아요. 민주주의에서는 절대 나와선 안되는 사진이죠. 이 정권은 그 사진 하나로 영원히 낙인 찍히는 거죠. 그리고 서울에 올라오면서 측근들한테 그렇게 화를 냈다더군요.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과 무능을 감당하고 인정할 수 없는 거죠.


(쓴웃음)


대통령은 국가라는 걸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나서는 순간엔 당연히 국민들이 기대를 하겠죠. 하지만 해결할 수 없잖아요. 그걸 해결할 수 없다고 비난하면 이젠 대통령을 비판하면 나쁘다고 얘기하는 거죠. 아까 얘기했지만 결국은 대통령 또는 국가나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음을 주는 정치 체제는 한계에 와 있는 것 같아요.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근본적인 문제는 대통령제 자체만이 아니라 대통령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국민들한테 끊임없이 반복하는 정치 구조거든요. 그런 구조 안에서는 국민들도 스스로 놓아버려요. 정부가 해줄 테니 나는 안 해도 되고 내 최대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선택만을 반복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전 거버넌스 통치를 근본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각제든 뭐든 통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보는 거고.


(끈질기게 내각제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왜 사람들이 분노하고 민심이 자기들을 떠나갔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할거예요. 근데 이해하지 못하면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리지 않고 계속 헤매겠죠.


그렇죠. 나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국민들이 안 알아준다고 생각하겠죠.

 

8.

 


정치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명분을 다 놓쳐버렸어요. 사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는 굉장히 훌륭한 아젠다거든요. 제가 <에스콰이어>의 서평 칼럼에서 <폴트라인>을 다룰 때도 썼지만 오바마가 들고 나온 정책은 라잔이 얘기했던 20년 간의 경제 모순을 정확하게 짚어낸 거거든요. 라잔의 주장은 굉장히 심플하잖아요. 사회안정망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자 정부가 고용 대신에 주택시장을 풀어서 거품을 만들어준다. 거기에 정치적 압력에 약할 수 밖에 없는 연준도 협조했고 탐욕스러운 은행가들, 투자자들, 기회가 생기면 방탕해지고 싶은 보통 사람들 등 그 모든 사람들이 주어진 인센티브에 충실히 반응해서 그런 '폴트라인'이 생겼다는 거죠. 오바마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걸 정확하게 의료보험개혁, 교육개혁, 금융개혁으로 나눴어요. 클린턴 때 실패했던 의료보험 개혁은 성공했고 금융개혁으로 이젠 대학생들이 투자은행에 가는 게 아니라 실리콘밸리로 살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만든 거죠.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표방한 국가 아젠다를 두 개로 요약하면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잖아요. 근데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가치인 경제민주화는 당선되자마자 날려버렸죠. 창조경제는 사실 시늉만 하고요. 예를 들어 벤처를 만들려면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에 다니던 과장, 차장급의 사람들이 기술을 갖고 뛰어 나올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줘야하는건데 경험도 없는 대학생들한테 창업 기회를 주고 있잖아요. 그건 벤처가 아니라 소꿉장난이죠.


스타트업 현장을 취재하면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서글퍼져요. 다들 SNS만 갖다놓고 앱 하나 만드는 걸 창업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이미 그런 창업 흐름은 끝났는데요.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냥 열심히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게 창조경제라고 오해를 하고 있어요. 창조성이라는 건 ‘불법만 아니면 다 해봐’라는 정신에서 나오거든요. 게다가 요즘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불법만 아니면 다 해봐’를 넘어서 불법인 것도 합법으로 만들어주고 있어요. 뉴욕도, 워싱턴도 마리화나를 합법화했잖아요. 이제는 집 앞에다 마리화나를 심어놓고 담배를 피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남한테 피해주는 것이 아닌 한, 둘 간의 사적 계약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동성결혼도 합법화되고 있어요. 사적 계약에 대해서 공적 개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풀어주는 거죠. 국민들이 알아서 하게 맡겨요. 국가는 시장에 맡겨서 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하는 거죠. ‘오바마케어’는 아마도 오바마 개혁의 가장 핵심적인 개혁일 거에요. 오바마의 교육개혁은 우리나라처럼 대입제도를 어떻게 바꿀까 이런 개혁이 아니에요. 오바마는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서 어떻게 하면 교육개혁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교육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비인지능력이 발달하기 전인 유치원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지금 유치원 교육에 재원을 투자하고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교육 개혁한다고 유치원 개혁을 하자고 하면 ‘뭔 삽질이야’ 이럴 거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만큼 사회적 아젠다에 대한 학문적 지원과 그게 바탕을 둔 접근이 어려운 거죠. 박근혜 대통령은 21세기형 아젠다를 갖고 당선이 됐지만 실제로 국가 경영은 유신시대의 국가전략을 갖고 하니깐 불일치가 생기는 거예요. 아직 정신은 70년대에 머물러있는 거죠.


(심드렁) 진단을 못하니 치료가 될 턱이 없겠죠.


앞으로 남은 3년 반동안 이런 식으로 간다면 더 비극적이겠죠. 바뀌지 않으면 박근혜 본인에게도 국가에도 굉장히 비극적이겠죠. 그리고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해 저는 비교적 단순하게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미국처럼 자동차 범퍼에 민주당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게 쿨해보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9.

 

앞으로 또 어떤 리더가 나와서 뭔가 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 그걸 믿으면 안될 것 같아요. 오바마는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내가 할 수 있다”고 안 했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뭘할수 있을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만들죠.


저는 미국을 비교적 디테일하게 봐왔는데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미국 경제가 회복이 되고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미국이 정말 운이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위기가 왔을 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건 정말 아무나 못 하는 일이거든요. 그 때 하필 오바마라는 존재감 있는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것도 그렇고요 저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딱 됐을 때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유신스타일로 정치를 하되 통일을 하겠다. 통일 대통령 박근혜와 경제 기적 대통령 박정희라는 패키지로 역사에 기록되고 죽겠다’ 뭔가 멸사봉공의 의지를 불태우며 그런 정신으로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그런 정신이 굉장히 시대착오적 정신이었다는 걸 세월호 사건으로 웅변한 거죠. 근데 그걸 과연 대통령이 깨달을 것이냐가 문제죠.


(괴로워한다) 이미 국정을 수행하고 있는 60대 대통령이 바뀔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비극의 발단은 사람이에요. 이명박을 지지했던 사람이든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이든 이명박 정권이 실패한 정권이라는 것에 대해선 대부분 동의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돈 교수처럼 ‘그러니까 여당 안의 야당인 박근혜를 지지했어’라는 변명을 하며 박근혜를 뽑은 거죠. 하지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했잖아요. 근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로 간다는 거죠.


카트리나 때요. 미국 정부가 사실 완전히 붕괴됐거든요. 부시는 그 이후로도 3년 이상 정권을 유지하죠. 근데 그 사이에 미국 정치 안에서 대안 세력을 만든 거거든요. 박근혜 정부의 남은 3년 반은 정부가 아니라 정부 이외 사람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단 겁니다. 청와대나 정부가 무엇을 할 지 말 지는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이 정부는 이미 붕괴됐고 앞으로도 그냥 본인의 통치 방식대로 가겠죠. 남은 기간 동안 어떤 가치를 세워서 그걸 주장할 것이냐가 중요해요. 문제는 언론이에요. 지금도 유병언이란 인물이 어디 숨어있는 지에만 관심을 갖죠. 근본적인 대안을 얘기해야 할 언론이 사변적인 얘기들만 늘어놓고 있는 거죠. 심지어 미국은 오프라 윈프리가 카트리나 때 그런 근본적인 얘기를 했다고요.


약간 낙관을 해보자면 이런 사건때문에 모두가 믿지 않던 민주당이 조금 더 확장되고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의원 수가 늘어나고. 이런 것들은 굉장히 긍정적인 신호라고 봐요. 야당의 확장 말고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긴장시킬 방법이 없거든요. 근데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지역감정. 사실 지역 감정 자체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진 않아요. 우리가 남이 아닌 건 사실이고 고향 사람, 동문들끼리 친한 건 어쩔 수 없죠. 그건 인지상정이에요. 하지만 지역감정이 나쁜 건 잘못한 정권이 바뀌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언론이 지방선거 관련된 민심을 취재해요.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데. 대구가 울산보다도 소득 수준이 낮고 20년 동안 정체돼있던 도시에요. ‘계속 여당인 새누리당을 당선시켜줬는데 바뀐 게 뭐가 있냐’고 말해요. 사실 그래서 문제인 거죠. 내가 만나는 여자가 있지만 다른 여자를 매일 만나요. 연락도 잘 안되고 만나면 매번 빈대 붙어. 근데도 여자가 잘해줘. 내가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지 튀어 나오고. 그럼 내가 왜 잘 해줘야 돼요? 내가 잘못하면 잘릴 것 같고 딴 남자 만날 것 같고 그래야지 잘 해주는 거 아니에요? 새누리당이 무슨 짓을 하든 계속 찍어주는데 왜 잘하겠어요.


(암담한 표정) 그런 거죠?


 

10.

 

저는 국가에도 운명이란 게 약간은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국가가 될 운명이면 박근혜 정부가 깽판을 쳐도 갑자기 북한이 붕괴되거나 통일이 되면서 북한이라는 존재로 경기가 살아날수도 있어요. 그런 변화가 장기적으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때나 야당 총재 때 한번도 대북 관련 아젠다를 내세운 적이 없어요. 근데 경제민주화라는 아젠다를 버리고 통일을 내세우는 건요. 현재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죠.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미국 사이의 관계는 구한말 때 사이와 유사하니깐요. 대통령도 그걸 읽긴 읽었겠죠. 국가의 힘으로 국민들한테 내세울 수 있는 거대한 아젠다는 통일이라는 걸 생각한 거예요. 오바마케어처럼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갖출 수 있는 아젠다에 집중했어야 하지만 그건 보이지도 않고 대단한 업적도 아닌 것 같거든요. 사실은 더 중요한데. 그래서 통일만 던진 거죠.


유신의 정신과 사회 구조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 역사에 남을 것을 찾다 보니 통일을 내세운 거예요. ‘햇볕정책’으로 북한과 화해를 해서 평화로운 시대를 열겠다라는 철학으로 시작한 게 아니죠. 아버지나 내가 누렸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는데 아무 이상이 없으면서 대단한 성취까지 할 수 있는 건 통일이란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했던 것 뿐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세월호 사건이 암시하는 거대한 삐걱거림은 그게 안맞다는 거죠. 시대착오라는 거죠. 본인은 그걸 이해 못 하고 있을 거예요. 비극적이죠.


제가 이해를 못 한다고 느꼈던 게 어버이날이였어요. 어버이날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올라오셔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했거든요. 그 시간에 대통령은 민생경제대책회의를 했어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어요. 거기서 느껴진 건 대통령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게 아니었어요. 어차피 팽목항에 내려가서 학부모들 만나봤더니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추경예산 발표하고 돈 풀어서 경기 부양하는 건 본인이 할 수 있는 거죠. 본인이의 국가관하고 맞죠. 통일하고 비슷해요. 하지만 유가족들과 대화하고 필요한 걸 들어주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본인이 생각하는 국가관과 맞지 않는 거죠. 근데 우리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건데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죠.


 이런 상황이 참 답답해요. 제가 야당 국회의원이거나 당직자면 맨날 무언인가 쓸 거예요. 할 말이 많으니까. 이렇게 명료하게 흥미로운 상황에 정치인으로서 발언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서 근질거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이런 정치 얘기는 지나가고 시장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역사가 퇴행해서 정치 얘기를 해야 하는 시대가 돼 버린 거죠. 1990년대에 다 정리된 줄 알았는데 그 때 했던 얘기를 또 끄집어내서 또 얘기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게 답답해요. 

 

다음 잡담에선 정치 말고 시장이나 사회 얘기를 하죠.

 

JO&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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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