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인터스텔라- 중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생'

주의 ㅣ 이번 잡담엔 <인터스텔라>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1. <인터스텔라> IMAX와 허니버터칩이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신기주(이하 주) (자랑스럽게) 저는 <인터스텔라>를 두 번 봤답니다. 한번은 4DX로, 또 한번은 IMAX로.

 

김동조(이하 조) (비웃으서) 두 번 다, 혼자 봤다는 게 함정이죠.

 

(못들은 척) 요즘 존재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면서요.

 

허니버터칩과.

 

(다시 자랑스럽게) <인터스텔라> 아이맥스 관람.

 

IMAX로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허니버터칩을 먹는 거

 

(억지스럽게) 전, 봤다고요. 허니버터칩은 못 먹었지만.

 

(놀리며) 좋던가요? 혼자서, 두 번씩 봐도?!

 

(국면전환을 노리면서, 괜히 진지하게) 이 영화의 본질은 이야기가 아니에요. 주인공 남녀가 블랙홀을 가로지르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을 영상화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든 거죠. 그 장면을 IMAX로 본다는 것은 굉장히 값진 경험이라고요. 실제로 기존 2D보다 두 배 이상 화면이 크니까 잘렸던 화면이 다 나오더군요.

 

CGV 입장에서 IMAX는 남는 장사죠. 4DX와는 달리. 4DX는 안 남는 장사고.

 

하긴. 4DX는 상황 연출을 위한 추가 비용이 들지만, IMAX는 그냥 스크린만  크면 되니까.

 

4DX는 구색을 맞추게 만들어놨지만 사실은 사용료가 더 많이 들어요. 일년에 500억 정도 버는 CGV가 관객에게 영화관람 서비스 자체로는 적자더군요.

 

팝콘과 콜라?!

 

팝콘과 콜라를 팔아서 손실을 메우고 진짜 돈은 광고로 벌더군요.

 

앞에 붙어있는 기나 긴 광고가 주요 수입원이구나.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앞 광고가 길게 느껴지지만, 그 덕분에 영화 티켓을 싼 거죠.

 

관객들은, 티켓값도 싸고, 광고도 덜 보고 싶죠.

 

그래서 광고시간을 늘리면 돈을 벌 것 같지만, 사람들은 기분 나빠서 나가 버리면 안되니까, 시간을 적당하게 잘 조절해야죠. 그래서 중국시장에서 CGV 고전 중이에요. 광고 때문에.

 

아, 광고를 제대로 붙이질 못해서 그런 거구나.

 

재미있는 건, CGV는 대부업체인 러쉬앤캐쉬 광고 같은 건 하지 않아요. 1위 기업으로서의 윤리의식이라고 할까. 고객들의 반감도 감안해야 하고. 하지만 롯데씨네마는 그냥 대부업체 광고도 가리지 않고 틉니다. 그리고 기꺼이 욕을 먹어요. 롯데 스타일 아시잖아요. 욕 먹고 돈을 버는 기업. 그렇게 하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가니까.

 

그게 소비자의 심리죠. 계속 욕하면서도, 허니버터칩이 먹고 싶어하는 거니까.

 

2. <아마겟돈>과 <인터스텔라>는 둘 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인가?

 

사실 우주 영화 중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성통곡하며 본 영화가 있는데.

 

(직감적으로) 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

 

그게 엉뚱하게도 아마겟돈이라는 영화였어요.

 

(그럴 줄 알았다) 역시.

 

이 얘기를 하면.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눈물겹죠. 난 지금도 정말 울 것 같아.

 

정말 절 냉소하던데. 하하.

 

전 완전 이해해요.

 

그래요?

 

딸이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서, 펑펑 울잖아요. 이거 <인터스텔라>와 이어지는 얘기네요.

 

맞아요. 전 지금은 없어진 남영동 성남극장에서 혼자 그 영화를 보다가 엉엉 울었어요. 태어나서 영화 보다 운 건 그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마초 아빠들의 대화로 흐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저는 사실 <인터스텔라>에 흐르는 아빠와 딸의 연대감 그리고 가족애가 <아마겟돈>의 것과 다르진 않다고 봅니다. 다만 <아마겟돈>의 것이 굳이 비교하자면 조금 더 날 것이겠죠.

 

<아마겟돈>은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인데 뭘 바래요. <트랜스포머>처럼 함량미달까지 안 가서 그만하니까 다행이죠.

 

<인터스텔라>는 훨씬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갖고 있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팬들이 마이클 베이와 둘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화를 낼 듯 한데요. 그런데 <아마겟돈>의 주제가를 부른 록그룹 에어로스미스의 리더 스티브 타일러의 딸이 <아마겟돈>의 여주인공 리브 타일러잖아요. 아빠 스티브 타일러가 ‘I Don’t want to miss a thing’을 부르는데, 영화 속에선 아빠를 잃은 딸이 살아 돌아온 남자친구 벤 애플렉한테 안겨버리죠. 너무 기쁜 얼굴로. 역시, 딸도 아들만큼이나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명장면이랄까. 아빠는 노래하죠. 아이 돈 워너 미스 어 씽.

 

딸바보 아빠만 캐치하는 미묘한 디테일과 근거있는 분노네요.

 

(시무룩) 아빠라면 결국 언젠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랄까. 생각만해도 아프네. 어쨌든, 다시 <인터스텔라> 얘기로 돌아가면, 결국 아버지가 딸한테 돌아가려고 애쓰는 얘기잖아요. 어차피 떠나버릴 딸.

 

3. <인터스텔라>는 <미생>인가?!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재밌다기보단 슬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주로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깊은 슬픔이 느껴진 맥락이 있어서 가슴 아팠지만,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이해할 수 없어서 더 가슴이 아팠어요.

 

수학II를 접해본 적도 없는 문과생으로서, 저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네요.

 

(웃음) 블랙홀에서 위치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5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물리학자들간에도 이론의 여지가 있다고 하니 상상력의 영역으로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쿠퍼가 한 시간이 7년에 해당하는 행성에 가는 장면이 있어잖아요.

 

밀러 행성이죠.

 

앤 해서웨이의 헛짓으로 23년이란 시간을 날려버리잖아요. 그런 후 돌아왔더니 4시간 전에 봤던 흑인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돼있고 분명 고향에 두고 온 내 딸도 23살을 더 먹어서 동갑내기가 되어버렸을 텐데 비극적인 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더 오래 산 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냥 나는 내 시간을 보낸 것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은 흘러버렸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 버리죠.

 

(문과생인 주제에 아는채하면서) 그게 상대성 이론이죠.

 

슬프잖아요. 내가 여기서 남들보다 더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같은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거의 잃게 된 상황이, 저는 월급쟁이의 인생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졌어요.

 

정말, 진심으로, <인터스텔라>를 <미생>으로 푸실 겁니까?!

 

(뜬금없이 진지하게) 우리가 영위하는 호구지책이란 것이 실은 중력이 무거운 행성으로 날아가는 짓이  아닐까. 모든 아빠와 엄마들이 일하는 동안 곳은 집보다 중력이 굉장히 강한 곳이에요. 그래서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르죠. 집에 돌아와 보면 애들은 커져 있어요. 저처럼 트레이딩을 하기 위해서 스크린을 계속 몰입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토요일 아침 7시까지 매일 22시간을 스크린 속의 세상 살고 있는 것과 같아요. 토요일 아침 7시가 돼서 장이 끝나면 그럼 그때부턴 시간이 천천히 가는 걸 느껴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 커버린 애들 그리고 늙어버린 다른 가족들.

 

미생 아빠들.

 

영화의 해석은 열려있으니까. 마치 우주처럼.

 

(<에스콰이어>에 <인터스텔라>의 진지한 영화평을 쓴 주제인데, 어느새 <미생>식 해석에 혹해버렸다) 그런데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중력에 의해, 이사님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한테 몸이 빨려드는 거죠. 가장 사랑하는 사람. 물론 아내는 아니고, 애들?!

 

아닌 건 아니고.

 

(무시하면서) <인터스텔라>를 보면 도대체 왜 주인공 쿠퍼가 블랙홀에 빨려들었는데 하필 딸 서재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냐. 그곳이 딸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시공간이니까요. <인터스텔라>에서 보면 중력은 시공간을 초월한다고 나오잖아요. 사람 사이에 이끌림은 곧 사랑이고, 그건 중력과 같은 힘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결국 우리는 언제나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존재했던 시공간으로 빨려들 수밖에요.

 

사랑이 곧 중력이라.

 

그런데, 다시 이걸 <미생>식으로 얘기하면, 막상 밀러 행성 같은 직장에서 나왔는데, 월급쟁이가 빨려드는 곳이, 꼭 가족이 있는 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반전. 시간이 아까운 시공간은 집구석 말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아 좋은 지적인데요. 우리가 살아남은 인생을 재무이론을 적용해 현재가치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봐요. 내가 80까지 산다고 하면 나머지 40년 가치를 할인해서 현재가치를 구한다면 만약 내가 갑자기 부자가 된다거나 권력자가 되면 그 현가의 가치는 올라가겠죠. 그렇게 되면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내가 재미없어하거나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흥미로운 얘기를 하지 않는 것들에게는 가차없이 까칠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죠.

 

<인터스텔라>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죠. 시간도 자원이니까, 아껴 써야 한다.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자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돈을 쓰죠. 그래서 스티브잡스가 암 선고를 받은 다음에는 어마어마하게 까칠해진 거죠. 일을 못 하면 가차 없이 “넌 내 시간을 낭비시키는 쓰레기야”라고 고함쳤다고 하죠.

 

시간도 인간한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이다. 그런데 우린 시간이 무한한 자원인줄 알죠. 그게 우리가 미생인 이유?!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잡스의 입장에서의 1초와 저의 1초는 너무 다른 거죠. 잡스의 입장은  마치 중력이 무거운 행성에 떨어진 매튜 맥커너히와 비슷하죠.

 

근데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의 자원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거죠. 그게 또 이 시간의 특징이기도 한데. 예금 잔고가 얼마나 되는진 알 수 있죠. 하지만 우리의 시간 잔고가 얼마나 되는진 아무도 몰라요. 그건 건강으로 체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결국 시간은 그래서 상대적인걸 수도 있죠. 어떤 사람은 똑같은 시간을 굉장히 바삐 쓰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렇게 쓰지 않으니까. 자원을 낭비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저는 <인터스텔라>를 한국판 샐러리맨 버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었어요.

 

(자포자기) 솔직히 전 <미생>을 싫어해요. 어느 시대나 샐러리맨의 애환은 있어요. 예전엔 <TV손자병법> 같은 드라마가 있었죠. <미생>만큼 정교하진 않아도 그 나름 공감을 불러일으켰죠. 결국 그런 드라마들이 하는 건, 노예가 노예의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거죠. 노예끼리 서로를 불쌍하게 여겨봐야 뭐하나.

 

사람들은 직장이라는 공간으로 가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죠. 돌아오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중력이 무거운 곳으로 기꺼이 가는 이유는 언젠가는 내가 쿠퍼처럼 세상을 구하는 것에 비견할 뭔가 근사한 것을 이룩해서 언젠가는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꾼 후 블랙홀을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4.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와 중력과 사랑은 상관이 있다?!

 

  그런데, 다시 현실에 비유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중력이 무거운 곳이 어디일까요?

 

세상에서 제일 중력이 무거운 곳이요?

 

사랑하는 사람 옆 아닐까요? 이사님의 <미생> 비유와 정반대의 비유일텐데요. 중력이 가장 무거워서, 같이 있으면, 바깥 세상에선,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를 만큼, 시간이 빨리 가는 곳이죠. 난 두 시간인데, 바깥에선 난리가 났어. 역시, 쿠퍼도 블랙홀로 빨려들었더니, 종착점은, 블랙홀의 특이점, 결국 중력이 가장 강한 곳은, 가장 사랑하는 딸 옆이였다는 거죠.

 

그곳이 바로 이벤트 호라이즌이죠.

 

그 안으로 딱 빨려들어갔더니 나타나는 곳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옆.

 

그런데 원래 놀란 감독의 동생이 쓴 최초의 시나리오는.

 

조나단 놀란.

 

주인공이 아빠와 아들로 돼있었다고 해요. 놀란 감독은 딸 밖에 없어서 아들에서 딸로 바꿨다고.

 

(주워들은 얘기) 원래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였대요.

 

두 아들의 아빠로서 던지는 의문은 왜 저 아빠는 저 막중한 책임을 아들에겐 주지 않았고 왜 이벤트 호라이즌을 통해서 돌아온 공간은 아들의 서재가 아니라 딸의 서재였을까.

 

(딸바보 아빠로서) 당연한 거 아닌가?! 

 

(웃음) 우리는 둘 다 그 답을 알고 있죠.

 

아시겠지만, 아들은 서재에 항상 없다고요. 여자친구들 이벤트 해주느라. 24시간 내내 서재에 없기 때문에 소통 할 수가 없어.

 

아들은 여자를 따라다니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게임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아들은 야동을 보고 있을까요?

 

이 영화의 원형은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콘택트>란 영화잖아요. <콘택트>에선 딸이 아빠의 신호를 기다리죠. 지구에서. 그 딸의 남자친구로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를 연기한 배우 매튜 매커너히가 나오고. <인터스텔라>와 <콘택트>는 데깔꼬마니죠. <인터스텔라>에선 아버지가 딸한테 신호를 보내려고 난리치잖아요. 결국엔 소통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전달된다는거죠.

 

아빠와 딸은 되는데, 아버지와 아들은 안 된다?!

 

(박장대소) 그 얘긴 무슨 얘기냐. 우리가 밀러 행성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늘 딸한테 전달되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아빠와 딸은 그게 되는구나?!

 

제가 어디 라디오에 나가서, <인터스텔라> 얘기를 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 사랑이고 중력이란 것을 증명해 보인 적이 있죠.

 

유리겔라야? 어떻게요?!

 

저는 <인터스텔라>에서 앤 해서웨이가 그렇게 예쁘더라. <다크나이트> 때부터 완전 내 타입이야. 제가 배트맨빠인건, 잘 아실거고. 캐리커처까지. 어쨌든, 진짜진짜진짜진짜, 너무 예쁜거죠. 숏커트에.

 

저기 서울 광장 나가서 물어보세요. 자기 타입 아니라고 할 남자 한 명이라도 있나.

 

(진지하게) 난 앤 해서웨이 너무 좋아해. 그럼 나의 마음만으로도, 태평양을 건너서, 슈퍼스타라서, 저하곤 계층적으로도 수억 광년쯤 떨어져 있는, 앤 해서웨이의 옆에 있는 것처럼, 제가 느끼게 만들어주지 않겠어요?  저와 앤 해서웨이의 시공간은 찢어져있지만 난 그녀가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요.

 

아, 괜찮은데?!

 

이게 바로, <인터스텔라>의 주제라고요. 그 얘길 다시, 아까 말씀하신, 연애의 경제학으로 바꿔놓으면, 전 위치에너지가 앤 해서웨이보다 낮죠. 그러나.

 

빨리 성공하셔서,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서, 앤 해서웨이에게 날아가세요.

 

그렇죠. 근데 운동 에너지로 어떻게 바꿀 것이냐. 블랙홀을 찾아서. 특이점을 찾아야하는 거죠. 성공의 싱귤레러티를 찾아야하는거죠.

 

이벤트 호라이즌.

 

그런데, 다른 방법도 있다고요. 제가 앤 해서웨이를 무지무지무지 사랑하면, 사랑의 중력이 커지고, 결국 제 사랑의 무게 때문에, 제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서, 앤 해서웨이의 서재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본질은 첫째도 블랙홀이고 둘째도 블랙홀이라고요.

 

블랙홀.

 

가끔 자기 중력이 너무 센 사람끼리 만나기도 하죠. 자아밀도가 둘 다 너무 높아. 그러면, 서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다가, 결국 블랙홀이 포개져 버린, 이중쌍성이 된다나 뭐라나.

 

그래서, 암흑혹성이 되는 게, 이혼이죠.

 

(잠깐 미쳐서,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딜런 토마스의 시를 개사해서)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돌씽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시오.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가는 젊음에 대해.

 

5. 과연 인간은 인류 종족으로서 사고할 수 있는가?

 

(어이없음) 근데 최근 나오는 영화의 많은 것들이 뭐랄까. 우리가 기술과 인간 사이에 접점을 못 찾고 있단 느낌을 받아요.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중에선 조니 뎁이 나온 <트랜센던스>.

 

(갑자기 얘기가 <트랜센덴스>로 튀어서 종잡을 수가 없다) 아, 그 조니 뎁이 컴퓨터 되고 그런거요.

 

인간의 영혼 내지는 의식이 전기적 신호에 불과하다는 가정에 근거한 영화죠. <매트릭스>에서도 나왔던 주제인데요. 그 영화에서는 죽은 조니 뎁을 그의 부인이 죽기 직전 슈퍼 컴퓨터에 저장을 시켜요. 재밌는 건 약간은 달라진 조니 뎁의 반응에 사람들이 쟤가 진짜 조니 뎁이 맞나 아니면 원래 깔려있던 슈퍼컴퓨터에 불과할까 끊임없이 의심해요. 다가올 이런 형태의 미래에 대해서 우울하고 불안해하고 의심하는 사람들로 영화는 가득 차 있죠. 많은 뇌과학자들은 멀지 않은 시기에 우리의 정신이 컴퓨터에 저장될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냥 따라가고 있다) 근데 거기서 <매트릭스>가 얘기했던 것이기도 하고 그 주제는 <공각기동대>에서도 많이 나왔던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고스트는 복제가 가능하나 고스트의 의지를 복제할 순 없기때문에 단지 USB에 데이터가 저장돼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게 이제 레옹 만든 뤽 베송 감독이 만든 최근의 스칼렛 요한슨 나온 <루시>에 나온거였잖아요. 결국 최종 결말은 주인공 루시가 뇌를 100%쓰고 나니까 USB가 된다는거였는데.

 

정말?!

 

물론 USB를 남기고 초월적 존재가 된단 얘기. 어쨌든, <매트릭스>와 <공각기동대>에서 계속 나오는 얘기는, 인간 두뇌의 정보는 복제가 가능하지만, 인간은 초이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지가 인간 영혼의 본질이고, 그건 복제가 불가능하다는거죠. <공각기동대>에선 그걸 호기심이라고 표현하죠.

 

호기심.

 

(겨우 잡담을 다시 <인터스텔라> 얘기로 돌리면서) 같은 맥락이 <인터스텔라>에도 나와요. 맷 데이먼이 연기한 닥터 만은, 최후의 순간에, 생존을 선택하죠. 그게 과연 비난 받을 것인가에 대한 윤리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어요.

 

사실, 그 만이란 캐릭터는 상당히 합리적인 캐릭터에요.

 

심지어 크리스토퍼 놀란은 닥터 만의 스핀오프 이야기를 그린 만화가 만들었더군요. 닥터 만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겁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이런 얘기가 나와요. 우주에 나오면 인간은 개체로서가 아니라 스피시스, 즉 종족으로서 사고해야 한다. 그런데 합리적 인간은, 종족이 아니라 개체로서 사고해야 하거든요. 지구 환경이 파괴되든 말든, 이기적이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죠. 닥터 만은 우주에서, 개체로서 사고하기 시작한 겁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만 박사 같은 인간형을 옹호하는 체계죠.

 

저도  만박사를 옹호해요.

 

(웃음) <인터스텔라> 초반에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나와요. 쿠퍼가 장인어른과 둘이 얘기하는 장면이 나와요. 쿠퍼는 우주에 나가고 싶죠. “예전엔 모두가 우주를 보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고민했는데 지금은 땅만 보고 있다”고 말하죠. 그러자 장인어른이 이렇게 말해요. 지금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예전처럼 60억 명 모두가 모든 것을 가지려고 했던 세상이 정말 좋은 것일까.”

 

역시, 두 번 혼자 본 남자.

 

(못들은 척) 만 박사 얘기하고 겹쳐요. 모든 개체가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경우 지구는 멸망하는 거죠. 그리고 나서 우주 공간에 나가 새로운 행성을 찾겠다고 하지만 그 순간조차 인간은 만 박사처럼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라는 묵시록적인 얘기일수도 있어요. 정말 자기희생을 해서 우주에 나갔는데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사고하는 인간.

 

6. 지구 정치 얘기는 우주 사랑 얘기의 블랙홀인가? 

 

인간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인간이 속한 집단 전체의 효용을 갉아먹는 건 흔한 일이죠. 클래식 콘서트에서 내가 일어서서 보는 게 편해 일어나면 내 뒤에 모두가 일어나버리겠죠. 그러면 모두가 다 일어서고 그러면 아무도 편하게 관람하지 못하게 될 수 있죠. 그게 소위 ‘구성의 오류’인데. 그런 것들을 막는 역할이 바로 정치에 있죠.

 

(웃으면서) 결국, 잡담은 다시 또 정치로 돌아가는 걸로.

 

매커니즘 디자인을 어떻게 해서 최대한의 효용을 얻으면서도 개별적 개인이 겪는 희생을 최소화할 것인데 어떤 경우에도 개인이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려 노력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죠. 궁극적 책임은 정치가 져야죠. 그런 정치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 모인 집단의 역량이겠지만.

 

그게 사실은 사회 또는 국가 또는 조직의 어쩌면 유일무이한 성장동력이니까요. 자기 자신을 위하는데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으로 만드는 어떤 매커니즘을 개발해야겠죠. 하지만 그것도 항상 모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거죠.

 

나사 프로젝트를 관할했던 마이클 케인은 지구에 있는 주민들을 우주 공간으로 보내는 프로젝트 자체가 설령 중력의 문제를 푼다고 해도 블랙혹 내부의 정보 없이는 불가능하단 걸 알았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가능한 양 행동하잖아요. 실제로 추진한 프로젝트는 생명의 근원을 담은 것들을 실어서 몇 가지 행성에 떨어뜨려 놓는 것 뿐이고.

 

거기서 윤리적 딜레마가 발생해요. 극장에서 모두가 일어나면 아무도 영화를 보지 못 해요. 그럴 경우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서 모두가 앉자,라는 선택을 하죠. 근데 그 순간 내 자식이 극장에 있어요. 내 자식은 그 영화를 보기 위해서 일으키고 싶어. 그 순간에 모든 인간은 일어나요.

 

아빠의 숙명.

 

<인터스텔라>가 말하는 것도, 인간은 자기 자식을 위해선 공리를 파괴하기도 하죠. 그게 바로 쿠퍼가 하는 선택입니다. 쿠퍼는 인류를 구해서 여기까지 온 주제에, 갑자기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워요. 결국 쿠퍼는, 인류가 아니라 자기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거죠. 자기 자식이 슬퍼하는 걸 본 순간, 인류고 뭐고, 극장에서 일어나버리겠다고 한 거죠. 구성의 오류.

 

쿠퍼는 애초부터 공리적인 선택을.

 

했던 사람이 아닌거죠.

 

네. 쿠퍼가 과연 대의명분 내지 종족의 안위를 위해서 애초부터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었죠. 우리 딸이 살 지구가 멸망해가니까. 딸 세대에는 지구가 멸망할테니 딸을 구하기 위해서 간거죠. 결국 인간이 믿고 있는 공리라는 건 허울뿐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공유경제니 뭐니 떠들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공동체적인 사고라고 해봐야, 자기 자식을 위한 것까지인 거죠. 그게 최대치의 공리.

 

그게, 인간이죠.

 

나 이외에 다른 개체를 위해서는 한치도 사고를 할 수 없는 존재. 쿠퍼가 우연히도 블랙홀에 빠져들어서 인류의 일부를 구하는 건, 어차피 딸을 못 보게 돼서죠. 블랙홀 지나가면서 50년이 지나갔으니까. 어차피 딸은 늙어 죽었을 거라고 여기는 거죠. 그래서 블랙홀에 들어가서 자폭하는 건데, 우연히 블랙홀의 이벤트 호라이즌으로 빠져들죠.

 

7. 우리는 딸을 구하기 위해 떠나야 하는 운명인가?

 

근데 어찌 보면 저는 쿠퍼의 애초 선택이 과연 딸을 멸망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냐,에 대한 의문이 좀 남아요.

 

아 그래요? 역시 딸이 없으셔.

 

왜냐면 모든 부모가 딸 세대가 멸망할 걸 생각해서 30년 뒤에 딸을 보기로 하고 날아가진 않는다고 보거든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난 딸이 있고.

 

30년 동안 딸을 못 보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서?

 

제가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우리 딸 세대에 한국 사회가 더 엉망진창이 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에요. 이건 정직한 대답입니다. 그걸 지금이라도 좀 막아야 한다는 거죠. 나중엔 막을 수 없으니까. 어차피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딸 때문에 세상 걱정을 하고 산달까.

 

실제로는 딸을 구하려는 대의명분보다는 사실 내가 폼나게 살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뜨끔해서 이실직고) 사실, 웜홀로 한 번 나가서 출세해서 예쁜 여자랑 사귀어보고 싶었어요. 

 

죽기 전에 너하고 오손도손 야구나 하고 공차기나 하고 그러고 살고 싶진 않아라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구를 구하겠다는 헛된 명분에 30년이란 시간을 낭비하고 난 자각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돌아갈래’라는 울부짖음으로 나타났고 실제로는 돌아가는 것에 실패해서 5차원의 공간에 떨어지잖아요. 거기서 자기가 떠나지마 라고 STAY라는 암호를 남기는데 그걸 딸이 보고 아빠 지금 내가 메시지를 받았어요. '스테이'하래. 그랬을 때 그걸 뒤에서 보고 있는 쿠퍼가 울부짖잖아요. 가지마 가지마, 라고 하는데 만약에 그 선택이 진짜 딸을 위한거였다면 그렇게 가지 말라고 후회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음. 그럴 수 있죠. 근데 두 가지가 모순되는데. 그 딸한테 떨어지는 그 순간이 하필이면 둘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고요. 자식한테 부모가 필요한 순간은 24시간 같이 있는 게 아니고 어떤 퀄리티타임 단 한 순간일 수 있어요. 어쩌면 자식이 자라는 20년 동안 한 두 세 순간 정도만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나머지 순간은 그들과의 시간이 중력이 낮은 순간일 수 있겠죠.

 

그게 바로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교육이죠.

 

제가 저를 용서하는 논리죠.

 

자식은 아빠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빠 엄마가 누군가에 달렸다.

 

그런데 또 한 가지가 있어요. 그렇게 해서 딸한테 억지로 돌아갔어요. 정말 정말 돌아가잖아요. 근데 그 딸은 이제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돼있어요. 근데 이 딸이 아빠한테 그러죠. 이젠 가라고. 어느 부모도 자식이 죽는 걸 볼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죠. 하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무슨 얘기냐. 딸은 아버지를 극복했고 아버지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았고 이제 더 이상 아버지한테 얽매여있지 않은 거예요.

 

먹먹하죠.

 

그 순간에 아버지는 뭘 해야 할까요? 자기 인생을 살아야죠. 그러니까 재미있는 건 이 사람은 딸을 구하기 위한 대의명분으로 우주에 갔는데 그게 이사님 말씀처럼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돌아오려고 했죠. 그러나 정작 그 딸은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네 갈길 가. 라고 얘기하잖아요. 그 순간 부모의 선택은 명확해지는 거죠.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이제 운이 좋아서. 결과가 좋아서. 딸을 구한 셈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건 영화죠. 영화니까 그런 거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세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함으로써 다음 세대를 위한 길과 교두보를 만들어주는 것 뿐인 거죠. 무조건 딸 옆에 있다고 해서, 좋은 아빠가 되는 건 아니란 겁니다.

 

근데 어떻게 보면 신기자 인생도 딸을 구하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이제 직장 생활을 하다 은퇴를 하고 돈을 벌만큼 벌고 딸을 다 키운 다음에 딸에게 돌아갔을 때 즈음에 딸은 이제 남자친구와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 둘러싸여서 “아빠 이제 아빠의 길을 찾아”.

 

가세요. 왜 나한테 왔어? 필요 없어.

 

아빠는 이제 직장이라는 중력장에 갇혀서 이미 시간을 보낸 뒤고.

 

근데 거기서 딸들은 또 그 얘기를 하죠. 아니 그게 나를 위해서 그랬던거야?

 

너 자신을 위해서 그랬던 거지.

 

그냥 아빠 인생 살았던 거잖아. 그럼 끝나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은 직장이라는 별에 갇히고. 우린 다른 별에서 생명의 근원을 찾으려 하지만 알고 보면 진정한 행복은 두고 온 별에 있는 영원한 인터스텔라의 삶을 살고 있죠.

 

아니, 왜 또 <인터스텔라>가 <미생>이 되는데요?! 

 

JO&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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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