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젊은 롯데의 슬픔

 

2010 6 17일이었다.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은 런던에서 <조선일보> 인터뷰를 했다. 당시 <조선일보> 신동빈 부회장한테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보다 훨씬 크다. 형님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은 한국 롯데를 경영하고 싶어하지 않나. 신동빈 부회장은 잘라 말했다. “이미 오래 전에 회장님이 한국과 일본 경영을 나눠줬으니 형님이 그런 말씀은 하지 않는다. 어느 시점이라고 잘라 말하긴 어렵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정해지게 됐다.

 

시장에선 신동빈 부회장의 발언을 후계 구도의 의미로 해석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롯데그룹 2 승계 구도가 당사자에 의해 구두로 확인됐다고 받아들였다. 오랜 동안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부회장이 맡고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부회장이 맡는다는 시장의 정설이었다. 창업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한일 셔틀 경영을 했지만 한국롯데와 일본 롯데는 오랜 동안 형제에 의해 독립 경영돼왔기 때문이다. 자연히 한국은 신동빈, 일본은 신동주라는 구도가 안착됐다. 롯데야말로 후계 구도가 가장 단순한 기업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나 막내딸인 신유미 씨가 주목 받았을 말고는 일본은 신동주고 한국은 신동빈이란 구도가 안착된 보였다.

 

최근 구도가 뿌리채 흔들리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신동주 부회장은 일본 롯데 그룹의 모든 공식 지위를 박탈당했다. 1 8 열린 임시주총에선 롯데홀딩스의 부회장직에서도 밀렸났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창업자의 장남, 경영진에서 추방됐다”고 보도했다.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모두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다.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신동주 부회장이 롯데그룹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했단 의미로 해석될 있다.

 

이제야 명백해졌다. 일본 신동주, 한국 신동빈이라는 단지 사업 구도일 뿐이었다. 일본과 한국 롯데의 경영을 장남과 차남이 나눠 맡는다는 뜻이지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장남과 차남한테 분할 상속해준다는 뜻이 아니었다. 따져보면 롯데그룹은 본질적으로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로 분할돼선 되는 기업이다. 롯데그룹의 진짜 경쟁력은 한일 양국의 경기차와 환율차와 문화차와 시간차에 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에 걸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야 말로 롯데의 성공 요인이었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롯데그룹의 중추는 일본 롯데였다. 1990년대부터 롯데그룹은 한국롯데로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겼다. 롯데그룹은 소비제 기업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내수 소비가 확대되는 시장이야말로 롯데한텐 가장 좋은 성장 토양이다. 1990년대부터 한국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내수 소비가 확대됐다. 다양한 소비 문화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신동빈 부회장이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하면서 한국 롯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도 1990년이었다.

 

롯데그룹은 한발 앞선 일본의 소비 트렌드를 한국에 적용시켜서 성공을 거뒀다. 도심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나 롯데마트 같은 사업은 한일 양국의 인플레이션 경기차를 미리 읽은 사업 아이템이었다. 반면에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같은 수입 품목들은 한일간 디플레이션 시간차를 활용한 사업들이었다.

 

물론 이런 구조에선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가 한국 경제보다 앞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한국 롯데의 성장세가 일본 롯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신동빈 부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아닌 해명을 했다. “일본의 경제성장 자체가 너무 둔화됐었다. 나는 성격상 지키는 것보다 공격하는 좋다. 형님은 반대로 오펜스보다 디펜스를 한다.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성격의 차이다.

 

능력이든 성격이든 형제의 경쟁은 숙명이었다. 언젠간 결승전이 불가피했다.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결정적인 변수는 2롯데월드였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하늘을 찌르면서 롯데그룹 안에서 한국 롯데와 신동빈 부회장의 위상도 강화됐다. 신동빈 부회장은 한국 롯데 회장 자리에 올랐다. 반면에 신동주 부회장은 자충수를 뒀다. 롯데제과와 롯데알미늄 같은 일부 계열사 지분을 매수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자초하고 말았던 보인다.

 

사실 롯데 경영권 승계에선 계열사 지분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확보가 핵심이다. 궁극적으론 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이면서도 베일에 싸인 광운사와 일본 주식회사L 통칭되는 정체불명의 특수목적회사들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후계가 달려있다. 신동빈 회장은 이미 롯데월드타워로 중원을 장악하자 신동주 부회장은 외곽을 때려서 반전을 도모했다. 마지막 패착이었다.

 

사실상 신격호 회장은 대학 시절부터 40 동안 아들을 경쟁시켰다. 1954년과 55 연년생인 형제는 나란히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하고 각각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 일정 시기에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에 입사했다. 평생 아버지 아래에서 경쟁해온 셈이다. 어차피 사람만 남는 경쟁이었다. 처음부터 제국은 나눠질 없었다. 왕좌 앞에선 형제도 적이었다.

 

신격호 창업주는 롯데라는 사명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가져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이 샤롯데다. 샤롯데는 베르테르와 사랑에 빠지지만 이미 알베르트와 약혼한 사이다. 샤롯데는 평생 베르테르와 알베르트 사이에서 번민한다. 신격호 회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의 샤롯데를 향한 열정을 본받고 싶어했다. 신격호 회장한테 롯데 그룹은 영원한 사랑이었다. 정작 롯데는 창업주의 두 아들 사이에서 오랜 동안 번민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롯데의 운명이다.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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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동조와 신기주 KIM&SHIN